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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지주사 밸류업 호기(好機)

원충희 서치앤리서치(SR)본부 부장

2025-06-09 07:53:07

한국 증시에서 지주회사들은 '저평가'라는 운명을 타고났다. 국내 대형 지주사들의 PBR은 대부분 0.3~0.5배 수준에 머무른다. 국내 상장 지주사 중 49%에 달하는 곳이 1배 미만이다.

원인은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순자산 대비 낮은 현금흐름 △자회사들의 중복상장 구조 △오너일가의 지분율이 높아 주요 의사결정 과정에서 일반주주보다 대주주의 이익을 우선시 하는 경향 △상속·증여세를 고려하면 주가를 높일 유인이 낮은 점 등이다.

지주사가 지배를 위한 도구로만 기능하고 시장과의 신뢰를 확보하지 못하는 구조에 갇혀 있는 탓이다. '상장 지주사 디스카운트'란 말이 시장에서 상식처럼 통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그렇기에 대선이 종료된 지난 4일 이후로 지주사들의 주가가 동반 상승한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LG, SK, 두산, LS 등의 급등세가 심상치 않았는데 기관투자가들의 포트폴리오에 지주사 주식 편입비율이 매우 낮아 일시에 수급이 쏠린 영향이다.

이번 지주사 주가의 상승은 새 대통령 당선 후 상법 개정안 통과와 자사주 의무 소각, 재벌기업 지배구조 개편, 저PBR 종목들의 밸류 정상화 등에 대한 기대감이 일시 반영된 데 따른 현상으로 보인다. 기관들 사이에서도 이 같은 밸류에이션 리레이팅(Valuation Re-rating) 요인이 지속된다면 지주사의 주가가 향후 집단적으로 올라갈 가능성이 크다는 판단이 있었을 것이다.

특히 새 정부의 자사주 의무 소각은 지주사 주가에 강한 리레이팅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롯데지주, SK, 두산, HD현대 등은 10% 이상의 자사주를 보유 중이다. 지배구조 개편과 관련해선 한화, CJ, HD현대 등 아직 승계 및 계열분리 작업이 끝나지 않은 지주사들의 주가 상승에 영향을 줬다. CJ의 경우 비상장 핵심 자회사 CJ올리브영과의 합병에 대한 기대감이 상승을 이끌었다.

통상 정권이 바뀌면 전 정부의 정책을 모두 갈아엎기 일쑤지만 '밸류업' 만큼은 지속되는 분위기다. 지주사 주가 상승이 일시적인 현상이란 평이 있으나 어쩌면 호기일수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 이유다.

일본은 도쿄거래소가 2023년부터 PBR 1배 미만 기업에 밸류업 계획 공개를 요구하면서 대대적인 주주가치 제고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기업들은 자사주 소각, 비핵심 자산 매각, IR 강화 등 전 방위적 혁신을 통해 시장과 다시 신뢰를 쌓는 중이다.

지주사가 단순한 지배의 중심축이 아니라 시장과 소통하며 가치를 설명하고 설득하는 주체여야 한다는 인식이 중요하다. 밸류업은 자본시장과의 신뢰 회복이며 주주의 권리를 존중하는 기업의 태도에서 출발한다. 전략이 아니라 태도의 문제다. 할 수 없어서 안 하는 게 아니라, 안 해도 되는 줄 알았던 일을 하는 것. 여전히 지배의 프레임에 갇힌 고정관념을 깨고 진짜 밸류업에 나설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