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 디스카운트’. 한국 상장사의 주식 가치가 글로벌 무대에서 경쟁력에 비해 지나치게 저평가되는 현상을 가리킨다. 한국 자본시장의 고질적 병폐로 꼽혔다. 이에 따라 매번 새로운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주가 저평가의 원인을 진단하고 저마다 다른 처방약을 내놨다.
이재명 정권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을 기업 지배구조에서 찾는다. 최대주주 중심의 불투명한 의사결정 구조와 소액주주 보호 장치의 부재가 주가 상승을 가로막고 있다고 판단했다.
상법개정안에 강력한 의지를 보이는 배경이다. 이재명 정권에서 추진하는 이번 개정안은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 명문화 등 5가지 법안을 핵심으로 한다. 이사회의 최대주주·경영진 견제 및 감시 기능을 강화함으로써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겠다는 의미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불투명·불공정’ 지배구조가 원인
주식을 발행해 자본을 조달하는 상장사는 주가 상승이 필수적이다. 주주가 위험 자본에 투자한 만큼 적합한 보상을 제공하는 게 자본시장의 기본원칙이라서다.
그러나 한국 증시의 수많은 상장사들이 기본원칙을 지키지 않았다.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22년까지 국내 상장 비금융 기업의 평균 PBR은 1.62배에 그쳤다. 같은 기간 PBR이 미국은 3.36배, 대만은 2.01배를 기록한 것과 대비된다. 시계열을 좁혀 2016년부터 놓고 보면 한국의 PBR은 일본보다 낮다.
정부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을 기업 지배구조에서 찾고 있다. 대주주가 경영권을 남용해 물적분할, 쪼개기 상장 등으로 소액주주의 이익을 침해할 수 있는 구조가 기업가치 저평가의 원인이라고 바라본다. IMF 금융위기 이후 지배주주 중심의 기업 의사결정 구조를 이사회 중심으로 바꾸라는 압력을 받았지만 아직 가야할 길이 멀다는 진단이다.
상법개정안은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카드로 여겨진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와 관련해 11일 서울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주식시장 불공정거래 근절을 위한 현장 간담회에서 “비정상적인 것을 고치는 것만 해도 (국내 증시가) 두 배 정도는 더 평가받을 수 있다”며 “상법 개정이 거기에 속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특히 이사회에 주목했다. 최대주주를 제도적으로 견제하고 기업 경영의 투명성을 제고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기구가 이사회라서다. 정부는 부진한 이사회의 독립성과 다양성을 개선해야 일반주주의 권익을 실질적으로 보호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상철 이화여자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한국 기업은 원자재 수입부터 제조·판매까지 사업구조가 복잡하고 오너 중심의 지배구조, 순환출자 등으로 소유구조까지 불투명해 리스크 프리미엄이 발생한다“며 ”이는 기업가치를 할인시키는 요인이므로 투명성 개선이 곧 기업가치 제고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사회 역할·책임 강화할 5가지 핵심 카드
상법개정안은 정부가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고자 기업 지배구조의 무게추를 이사회로 옮기려는 제도적 시도라고 볼 수 있다. 대주주의 영향력을 제한하고 이사회의 경영진 감시 기능을 실질화하는 게 핵심이다. 주주의 권익을 제도적으로 보호해야 한다는 정책 기조가 반영된 결과다.
상법개정안의 핵심은 총 다섯 가지다.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 확대 명문화 △감사위원 분리선출 확대 및 3%룰 적용 △집중투표제 의무화 △독립이사 제도 도입 △전자 주주총회 의무화 등이다.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 명문화는 직무 수행으로 위하는
대상을 종전 ‘회사’에서 ‘전체 주주’로 확장하는 게 골자다. 즉 이사는 회사만이 아닌 ‘회사 및 주주‘를 위해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상법개정안은 전체 주주의 이익 보호와 공평한 대우를 이사의 법적 의무로 명시했다. 만일 이사회가 특정 주주에게 유리한 결정을 내려 다른 주주가 손해를 볼 경우 사후 소송과 손해배상 청구 등 법적 분쟁이 생길 수도 있다.
△감사위원 분리 선출 확대는 대주주의 방어선에 균열을 내는 구조적 장치다. 분리선출은 감사위원 일부를 다른 사외이사 등과 별도로 선출하되 일반주주가 이 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는 제도를 말한다. 지금은 상장사에 한해 감사위원 1인만 분리선출하도록 되어 있지만 앞으로 2인 이상으로 확대될 수 있다.
특히 여기에 연계된 ‘3% 룰’은 감사위원 선임 시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이 행사할 수 있는 의결권을 합산 3%로 제한하는 내용을 뼈대로 한다. 3% 룰과 감사위원 분리 선출 확대 제도가 결합하면 대주주의 영향력 남용을 실질적으로 차단하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집중투표제 의무화는 자산총액 2조원 이상 상장회사가
대상이다. 기존에는 정관으로 배제할 수 있었지만 개정안은 이를 금지한다. 소액주주가 특정 후보에게 표를 집중시켜 이사 선임에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조치다. 제도 도입 시 행동주의 펀드의 주주제안과 이사 진입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
△독립이사 제도는 회사와의 이해관계, 직장 경력까지 따져 독립성과 전문성을 갖춘 인사를 이사회에 참여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전자주주총회 의무화는 주주 참여 장벽을 낮추고 권리 행사의 기회를 넓히기 위한 조치다. 제도 정착을 위해 1년간 유예기간이 부여될 예정이다.
이상헌 iM투자증권 연구원은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기 위해 정부의 지배구조 개선정책 확대 등이 무엇보다 필요한 시기”라며 “상법개정안이 지배구조 개선으로 이어지면서 새로운 기업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