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차그룹이 다음 세대로 넘어가는 데에는 큰 딜레마가 있습니다. 한국의 상속세에 정답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한국에서의 기업 경영은 쉽지 않습니다.”
최근
현대글로비스의 기타비상무이사를 15년째 맡고 있는 얀예빈왕(Jan Eyvin Wang) 전 빌헬름센 CEO를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다. 44년간 유럽·미국·아시아를 오가며 여러 기업들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그는 깊은 통찰과 넓은 시야를 지닌 인물이었다. ‘
현대차그룹에 가장 우려되는 점’을 묻는 질문에 ‘트럼프 관세, 글로벌 공급망 재편, OBBBA’ 등의 대답을 예상했던 내게, 그는 뜻밖의 ‘상속세’를 언급했다.
왕 이사는 한국 상속세의 역사를 짚었다. 1970년대 한국 정부는 빠른 산업 성장을 위해 재벌에 독점적 지위를 부여해 이를 지지했다. 이들이 축적된 부를 세대를 넘어 이전할 때 일부를 정부에 환원하는 것, 즉 상속세는 그 시대적 맥락에선 설득력을 가졌다는 설명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시대가 바꼈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금은 과거와 달리 글로벌 경쟁 환경에서 살고 있는데 한국의 상속 과세 시스템은 그대로”라며 “오늘날 세계에서 경쟁하는 젊은이들은 그들의 역량을 한국 밖에서 발휘하는 게 더 낫다고 말할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실제 국내 상속세 개편 논의는 수차례 있었다. 과도한 상속세는 기업이 투자보다 상속 재원 마련에 매달리게 한다. 당장 세금을 내기 위해 회사를 파는 일도 벌어진다. 규모가 큰 기업일수록 문제는 복잡해진다. 지배력 약화, 경영 안정성 저하, 장기 투자 위축 등이 동시에 발생할 수 있다.
실제 사례도 있다. 세계 1위 손톱깎이 생산업체였던 '쓰리세븐'은 창업주 타계 후 유족들이 상속세 부담을 견디지 못해 결국 매각되고 말았다. ‘
락앤락’ 회장도 상속세 부담으로 회사를 어피니티에 팔았고 작년
락앤락은 상장폐지 절차를 밟았다.
탄탄한 사업 기반을 자랑했던 국내 업체들이 상속세로 위기를 겪거나 사라지기도 하는 모습을 보면 씁쓸함을 지우기 어렵다. 스웨덴, 독일, 일본 등의 명망있는 '100년 기업'이 한국에선 낯설다.
“현재 CEO가 비전 있고 굉장히 똑똑한데 그 사람이 힘을 잃는다고 하면 이것이 주주들에게 과연 이득인지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왕 이사의 말은 상속세 부담이 단지 오너를 넘어 기업 경영과 주주 이익 모두에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점을 짚고 있었다. 이제는 상속세를 다시 생각해볼 때다. 미래 산업의 경쟁력과 기업의 지속 가능한 성장의 관점에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