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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보드 노트

이사회 선진화 측정법

이돈섭 기자

2025-11-12 08:02:02

"거버넌스 개선을 달성했는지 체크하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우리나라 기업 이사를 해외에 수출할 수 있느냐가 관건 아니겠어요?"

최근 만난 대형 로펌 소속 외국 변호사가 제안한 자칭 '거버넌스 선진화 측정법'이다. 우리나라 기업 이사회 멤버 중 외국 기업 이사회로 영입되는 경우는 얼마나 잦을까. 우리나라엔 세계 곳곳에서 활약하는 기업들이 즐비했다고들 하는데 최고 의사결정기구 구성원이 해외 기업 이사회 멤버로 스카우트됐다는 소식은 들어본 적 없는 것 같다.

물론 아예 없는 건 아니다. 한국인 최초로 미국 100대 기업 중 하나인 HP 사외이사로 영입된 윤송이 전 엔씨소프트 사장을 비롯해 일부 인사가 해외 기업 이사회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다만 이들 공통점은 이미 글로벌 시장에서 활약하고 있는 인사라는 점이다. 우리나라 시장에 적을 두고 해외 기업 이사회에서 일하는 경우는 찾기 어렵다.

반면 미국이나 유럽, 일본 등 이른바 선진국 현지 경제인이 우리나라 기업 이사회에 이름을 올리는 경우는 비교적 흔하다. 유명 CEO의 비서로 활동한 이부터 유력 패밀리오피스의 운용역을 맡은 이까지 직업과 배경도 다양하다. 이들을 영입하는 기업은 대형 그룹 계열사인 경우가 많은데 대개 영입과 함께 관련 홍보 자료를 배포하기도 한다.

사실 따지고 보면 거버넌스 개선이라는 게 서구식 기업 거버넌스 체제를 이식하는 작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해외 시장에서 우리나라 기업에 들어오는 외국인은 많아도 그 반대 경우가 적은 건 이상하진 않다. 어떤 상품이든 수출을 하려면 특출난 부분이 있어야 한다. 그 특출난 부분이 국가 경계를 넘어서도 발휘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기업 거버넌스 선진화는 이사진 교류의 전제조건과도 같다는 게 이 변호사 생각이었다. 서로 다른 국가가 같은 가치를 공유하면 서로를 이해하기 어렵지 않은 것같이 기업도 마찬가지다. 주주 이익을 먼저 고려하는 게 상식이 된 기업에서 최대주주 입장을 옹호하는 데 주력해 온 이사가 허심탄회하게 어울리긴 어려워 보인다.

올 하반기 상법이 연이어 개정되면서 대형 로펌 소속 변호사들은 직접 이사회를 찾거나 자체 세미나를 열어 상법 개정이 가져올 변화에 대해 설명하는 자리를 만들곤 한다. 그만큼 변화를 낯설어하는 이사회 멤버들이 많다는 얘기다. 변화는 쉽지 않지만 이를 기회로 받아들여 보면 어떨까. 이사회 수출도 전혀 생뚱맞은 얘기는 아닐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