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우연한 계기로 텐센트의 최상위 지배주주가 배달의민족(배민)과 같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초창기 배민은 한민족을 뜻하는 배달 겨레와 중의적인 의미로 이름을 알렸다. 배달앱 서비스의 편리성과 함께 약간의 애국심 마케팅이 깃들었다. 그래서인지 독일 딜리버리히어로(DH)에 팔릴 때 '게르만 민족'이란 조롱을 받는 등 국적 논란이 컸다.
이 논리대로라면 현재 배민은 더치 민족, 혹은 남아공 민족이란 소리를 들어야 할 것 같다. 배민의 모회사인 DH의 최대주주는 네덜란드 기업인 프로서스(Prosus), 이 회사의 최대주주는 남아공의 미디어그룹 내스퍼스(Naspers)다. 자본의 국적을 따진다면 배민은 최종적으로 아프리카가 되지 않을까.
물론 민족주의적 해석은 별 의미가 없다. 자본은 민족이 아니라 수익률을 따라 움직이고 기업의 지배는 국적이 아니라 의결권과 이사회에서 발현된다. 한국 소비자의 일상 속 서비스가 독일 법인의 손익계산서로 들어가고, 그 성과가 다시 네덜란드 상장사(프로서스)의 포트폴리오 가치로 환원되는 구조다. 국경은 지도에는 진하게 그어져 있을지 몰라도 배당과 투자, 합병과 매각 등에선 그 존재가 희미하다.
자본의 국경이 옅어지는 현 시대에도 우리는 여전히 기업을 국적으로 구분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배민이 국내 푸드테크 시장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갖게 되는 동안 회사의 최종 지배 논리는 글로벌 주주가치와 그룹 전략에 맞춰져 왔다. 가격정책, 수수료 체계, 신사업 투자 우선순위, 경쟁사와의 차별화 같은 핵심 의사결정은 한국이 아니라 모회사 DH의 이사회 테이블에서 좌우된다. 그 테이블의 균형추를 어느 방향으로 기울일 수 있는지는 프로서스 같은 주요 주주의 지분과 이사회 영향력에 달려 있다.
그래서 배민을 이해하는 핵심 열쇠는 국적이 아니라 지배구조다. 이는 '견제와 정렬(alignment)의 문제'가 된다. 한국 시장의 규제와 이해관계, 소비자·라이더·입점업주의 지속 가능한 생태계가 모회사 이사회의 핵심성과지표(KPI)와 충돌할 때, 누가 어떤 근거로 무엇을 설득해 균형을 만들 수 있는가가 본질이다. 로컬 경영진이 단순 집행자를 넘어 지역시장의 장기가치가 그룹의 장기가치와 일치한다는 논리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현지 이사회의 전문성, 독립성, 그리고 본사 이사회와의 실질적 협의 채널이 중요해진다. 한국에서 돈을 벌었으니 한국에 남겨야 한다는 감정론이 아니라, 한국 시장이 건강해야 전체 그룹 가치가 커진다는 주주가치의 언어로 말할 수 있을 때 견제는 작동한다.
배민을 둘러싼 지배구조는 결국 우리에게 한 가지를 묻는다. 당신은 여전히 기업을 국경으로 이해하고 있나, 아니면 이사회와 자본의 네트워크로 이해하고 있나. K-플랫폼의 성공이 글로벌 자본과 엮이는 건 피할 수 없는 흐름이다.
그렇다면 남는 과제는 하나다. 그 흐름 속에서 한국의 이해관계가 왜곡되지 않도록 설계된 이사회와 거버넌스의 안전장치를 얼마나 정교하게 갖추느냐. 자본의 국경이 흐려질수록 이사회의 국경, 즉 책임과 견제의 바운더리는 더 또렷해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