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법 개정으로 자사주 소각이 의무화되면서 기업들도 앞다퉈 대응에 나서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들어서만 200개 이상 상장사가 보유 자사주의 소각 계획을 발표했다.
자사주 소각 예정 기업들은 하나같이 주주가치 제고 효과를 거론한다. 여기에 보유 자사주의 금액 가치에 대한 설명이 더해진다. 수백억, 수천억은 예사고 조 단위의 주주환원을 내세우는 곳도 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기업이 보유한 자사주는 취득 시점에 배당 수취권과 의결권이 소멸됐다. 이미 권리를 상실해 주주환원과는 상관없는 주식이라는 의미다. 이 주식들이 사라진다고 해서 주주가치가 변할 리는 없다. 기업들이 말하는 주주가치 제고 효과는 자사주 취득 시점에 이미 발동됐다.
회계적으로 봐도 그렇다. 자사주는 취득하는 순간 해당 주식의 가치만큼 마이너스(-)의 자본조정이 기업의 재무제표에 반영된다. 자기자본이익률(ROE)과 같이 주주가치 측정에 활용되는 지표들은 자사주 취득 시점에 이미 변화했다는 의미다.
주목할 지점은 시장의 반응이다. 보유 자사주의 소각 발표가 주가 상승으로 이어지는 사례가 많았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최근의 상승장을 주도한 기업들 이외에서 사례를 찾으면 미래에셋생명이 3월4일 장 마감 뒤 자사주 소각 계획을 내놓자 이전 6거래일 연속으로 하락했던 주가가 다음날에는 전일 대비 29.98% 급등했다.
그동안 기업들은 보유 자사주를 전략적 파트너에 매각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의결권을 부활시켜 경영권 방어에 활용해왔다. 기업이 자사주를 매입한 뒤 보유하는 행위는 투자자 입장에서 주주환원이면서 동시에 향후 권리 부활 가능성으로 인해 주주가치의 상방을 억누르는 리스크이기도 했다.
이 리스크를 제거하는 것만으로도 시장의 반응이 뜨거웠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실제 주주환원 효과가 발생하는 자사주 신규 취득에 대한 반응은 어떨지 궁금해진다.
개정 상법에 따르면 기업은 법 시행일인 3월6일로부터 1년6개월 이내에 보유 자사주를 모두 소각해야 한다. 이 때부터 그간 증시를 제한해 온 기업들의 자사주 보유 현황이 제로베이스로 되돌아간다.
기업들이 자사주를 이전처럼 경영권 방어에 활용할 수 없는 만큼 신규 취득에는 소극적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그러나 투자자 호응을 이끌어내기 위해 자사주 취득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기업들이 잇따를 것으로 보는 시선도 적지 않다. 어느 쪽이 맞을까. 자사주를 활용한 진짜 주주환원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