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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월마트 사외이사의 결정

최명용 SR본부장 겸 부국장

2026-02-13 07:43:21

캘리포니아 월마트 매장에선 담배를 팔지 않는다. 전자담배는 전 매장에서 취급하지 않는다. 담배는 중독성이 커 한번 발을 들이면 쉽게 빠져 나가기 힘들다. 편의점에선 제일 잘 보이는 곳에 담배 매대를 둔다. 유인 효과가 크고 꾸준한 매출과 이익을 보장해준다. 하지만 월마트는 2019년 미국 주요 지역에서 담배 판매를 중단했다.

담배 판매 중단은 더그 맥밀란 CEO의 의지였다. 그는 1990년 MBA를 졸업하고 월마트에서 스포츠용품 구매 보조 임시직으로 사회 생활을 시작했다. 임시직이었지만 정규직으로 전환되고 꾸준히 성과를 내 2006년 월마트 자회사인 샘스클럽 CEO를 맡았다. 7년 뒤인 2013년, 47세의 나이로 월마트 수장에 올랐다.

맥밀란이 월마트 수장에 오른 시점은 유통 산업에 일대 변화가 일어나던 시기다. 아마존이 전자 상거래 공룡으로 거듭났다. 전통의 유통 기업들은 맥없이 쓰러졌다. 120년 전통의 미국 1위 백화점 시어스그룹이 2018년 파산을 했다. 월마트도 망할 수 있다는 위기감에 사로 잡혔던 시기다. 그 해답을 찾는 역할이 맥밀란의 미션이었다.

월마트는 수 많은 변신을 시도했다. 디지털 혁신, 전자상거래 도입, 온오프라인 통합 서비스, 프리미엄 브랜드 인수 등 체질 개선에 나섰다. 이런 변화를 준비하기에도 부족할 시간에 담배 판매 중단이란 결정이 나왔다.

월마트는 어떻게 이런 결정을 내렸을까.

퓨처보드룸이란 책(헬레 뱅크 요르겐센 저)에선 3명의 여성 사외이사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전했다. 담배 판매 중단은 맥밀란이 CEO 취임 초기부터 가졌던 의지였다. 지속가능성과 사회적 가치를 내세운 의지였다. 주말이면 아이들과 함께 마트에서 장을 보는 게 미국의 일상이었다. 아이들에게 가장 먼저 담배를 보여주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경영진 내부에선 반대에 부딪혔다. 변화를 준비하기도 바쁜 시기였다. 보장된 이익을 버릴 이유가 없었다.

2019년에 바뀐 월마트 이사회에서 의사결정이 이뤄졌다. 주요 역할을 한 3명의 여성 사외이사는 새라 프라이어(넥스트도어 전 CEO), 칼라 해리스(모간스탠리 부회장), 마리사 메이어(야후 전 CEO) 등이었다. 3인 모두 굵직한 기업을 경영한 금융과 경제 전문가였다.

이외에도 시저 콘도 NBC뉴스 회장, 티모시 플린 전 KPMG 인터내셔널 CEO, 토마스 호튼 전 아메리칸에어라인 CEO, 스티븐 라인먼드 펩시 전 CEO 등이 내로라하는 멤버들이 있었다. 사내이사는 이사회의장인 그레고리 페너, 더그 맥밀란 CEO 2명 뿐이었다.

이사회 멤버들은 월마트의 지속 가능성, 사회적 이미지를 먼저 걱정했다. 월마트의 변신은 단순히 디지털 혁신만으로 그쳐선 안된다고 봤다. 미래와 지속 가능성을 걱정했다. 담배 판매 중단은 이익 이상의 가치라고 판단했다.

담배 판매 중단 뒤 월마트엔 놀랍게도 아무런 타격이 없었다. 사실 담배 판매 비중은 전체 매출에서 5% 남짓 수준이었다. 유인 효과가 있다곤 했지만 이미 유통 구조가 바뀌었다. 당일배송, 온라인 주문 뒤 오프라인 픽업 등의 서비스가 오히려 더 효과가 좋았다.

월마트 최근 주가는 128달러선이다. 지난해 4월 81달러 선에서 50% 가량 상승했다. 얼마전 131달러로 사상최고치까지 경신했다.

2025년 3분기 누적 매출은 522억 달러로 전년 500억 달러 대비 4.4% 성장했고 영업이익은 21억 달러를 유지했다. 물론 실적 개선엔 디지털 혁신, 온오프라인 통합 전략이 주효했다. 이 과정에서 이사회가 이익 이상의 가치에 대해 의사결정을 내렸다는 점이 주목해야 하는 포인트다.

최근 더보드가 진행한 사외이사 세미나에서 '내용을 잘 모르는 데 사외이사들은 어디까지 책임을 져야 하나'란 화두를 두고 논의가 진행됐다. 하지만 사외이사들에게 시대가 묻는 것은 안건에 대한 이해도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 기업의 미래와 지속가능성을 염두에 둔 의사결정을 고민해달라고 주문하고 있다. 단순한 꿀 알바로 용돈벌이나 하는 자리가 아니다.

지금의 사외이사들은 이런 자격을 갖추었는지 스스로 되물어 볼 필요가 있다. 사외이사가 되고 싶은 분들이라면 기업의 명운을 책임질 준비가 돼 있는지 돌이켜 봐야 한다. 이런 분들이 모여야 올바른 이사회가 된다. 좋은 기업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