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닥 상장사 백금T&A는 올 정기주총에서 심혜섭 변호사를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심 변호사는 과거
남양유업 감사로 재직하며 이른바 주주인 이사의 이사 보수한도 셀프 승인 문제를 처음으로 공론화한 인물로 꼽힌다. 투자 기업을 상대로 직접 주주행동에 나선 이력도 있다. 백금T&A 측은 심 변호사 사외이사 선임을 통해 이사회 견제 기능을 강화하는 동시에 자본시장과의 소통 역량을 끌어올리겠다는 구상이다.
대부분 오너 기업들이 주주 권리 요구를 부담스러워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이 회사의 선택은 파격에 가깝다. 심 변호사 영입은 최대주주 임학규 회장이 직접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심 변호사에게 단순한 감시 역할을 넘어 주가 부양과 기업가치 제고를 위한 실질적 조언을 주문한 것으로 전해진다. 심 변호사도 사외이사 활동을 통해 기업 내부에서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 같은 흐름은 특정 기업에 국한된 현상이 아니다. 최근에는 행동주의 펀드의 직접적인 압박이 없었음에도 자발적으로 거버넌스 개혁 성향의 플레이어를 사외이사로 기용하는 사례가 점점 늘고 있다. 과거처럼 제도의 틈을 활용해 경영권 방어에 집중하기보다 변화된 규율 환경을 성장 기회로 여기고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려는 시도다. 언제든 주주 표적이 될 수 있다는 긴장감이 스스로를 바꾸고 있다는 진단이다.
현장의 인식 변화도 틈틈이 감지된다. 한 기업 CFO는 자본시장 전문가를 사외이사로 추천하면서 "오너가 의사결정을 밀어붙일 때 제동을 걸어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또 다른 코스피 상장사 사외이사는 "자본시장 생태계를 이해하는 인물이 있어야 시장의 요구를 정확히 읽고 대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사외이사의 역할을 '형식적 독립성'이 아닌 '실질적 기능'의 관점에서 바라보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물론 사외이사 한 두명이 이사회에 들어온다고 해서 대단한 변화가 일어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기업이 지금까지 시도하지 않았던 선택을 스스로 찾고 있다는 점에서 변화를 쉬이 넘기기도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한 자산운용사 대표는 "상장사는 이제 행동주의 펀드가 주주로 늘 들어와 있다고 상정하고 경영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어쩌면 경영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는 한 가운데 서 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