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할 때 북을 치지 말고 ‘이 회사는 더 이상 내 회사가 아니다’라고 선서하는 시간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요?”
얼마 전 만난 한 변호사의 말이다. 그는 법조인이지만 한때 기업을 운영하며 경영 일선에 있던 경험을 가지고 있으며 현재는 거버넌스 전문가로 활약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가볍게 들리지 않았다.
우리는 종종 ‘상장’을 일종의 훈장처럼 여긴다. 특히 창업자 입장에서는 창업 이후 수년 간 피땀 흘려 이룬 결과물이자 세상으로부터 인정을 받는 순간처럼 느껴질 수 있다. 상장식에서 북을 치는 세레머니는 이같은 감정을 극대화시킨다.
하지만 이건 착각이다. 상장(上場)은 상장(賞狀)이 아니다. 상장식은 창업자의 노고를 치하하며 트로피를 건네는 자리가 아니다.
상장은 흔히 IPO(Initial Public Offering)라는 영어 약어로 더 많이 불린다. Initial Public Offering, 말 그대로 비상장 기업이 처음으로 일반 투자자들에게 주식을 공개적으로 제공하는 것이다. 상장식은 겉보기에는 단순 축제의 장 같지만 실은 기업의 체질이 근본적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상장한 순간부터 회사는 더 이상 창업자 개인의 소유물이 아니다. 다양한 외부 주주들이 함께 회사를 이끌게 되고 기업은 이들에게 성과와 투명성을 책임져야 하는 위치에 놓인다. 창업자의 꿈이 실현되는 순간일 수도 있지만 이와 동시에 '내 회사'에서 '우리 회사'로 나아가는 변곡점이기도 하다.
상장은 곧 자본시장이라는 엄격한 법과 규칙의 세계로 들어간다는 의미기도 하다. 시장의 신뢰를 얻기 위해 재무 정보는 투명하게 공개돼야 하고 주주 가치 제고를 위한 꾸준한 전략이 필요하다. 이제는 창업자 개인의 철학이나 열정만으로 경영을 이끌 수 없는 구조가 된다.
더본코리아를 이끄는 백종원 대표는 상장 이후 한 인터뷰에서 "상장 날 제일 재밌는 건 빨간 옷 입고 북 치는 거였다. 스트레스가 확 풀렸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기쁨은 잠시였을 뿐 더본코리아는 오히려 상장 이후 각종 구설수에 휘말리고 있다. 팬덤이 컸던 백종원 대표지만 첫 정기 주주총회에서 주주들에게 사과를 해야하는 신세가 됐다.
상장은 끝이 아니다. 오히려 책임의 막이 오르는 출발점이다. 상장식은 박수갈채의 장이 아닌 앞으로의 책임을 다하겠다는 공개적인 다짐의 순간이 돼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