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각기 다른 그룹·업종 사외이사를 만난 자리에서 나온 공통 화두는 '창업주가 심은 DNA'다. 여러 기업 사외이사를 겸직하거나 한 기업에서 오랜 기간 사외이사로 활동하다 보니 자연스레 기업에 뿌리내린 문화가 보인다고 했다.
동원그룹 지주사에서 5년째 사외이사로 활동 중인 윤종록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겸임교수는 사소한 시장 반응이라도 그냥 넘기지 않는 이사회 문화를 '결벽증'에 비유했다. 창업주인 김재철 동원그룹 명예회장이 평소 경영 투명성을 강조한 덕에 어떤 사안이라도 숨기지 않고 떳떳하게 처리하는 기업 문화가 저변에 깔려 있다고 했다.
동원산업은 2세 경영인인 김남정 회장 주도로 2022년 사업 지주사 전환을 추진할 때 소액주주 의견을 수렴해 합병 비율을 바꿨다.
오너 2세가 사내이사로 활동 중인 기업 두 곳에서 활동하는 또 다른 사외이사는 양사 이사회 온도 차를 실감했다. 한 곳에서는 본인이 직접 이사회 의장을 맡아 끝장 토론이 가능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선대 회장대부터 이사회 독립성을 보장하는 경영 철학이 있고, 2세 경영에서 발언이 자유로운 이사회 문화로 정착했다.
반면 또다른 기업은 경직된 조직 문화가 이사회에도 나타났다. 소위원회에서 놓쳤던 부분을 전체 이사회에서 질문하기 전에 여러 번 고민하게 된다고 했다. 이사회 논의 때 돌발 질문이 나오면 오너 경영인이 임원진을 나무라기 때문이다. 사외이사에게 안건을 미리 자세히 설명해 주지 않았냐며 야단치니 할 말을 하면서도 마음이 편치 않다고 했다.
여러 사외이사에게 이사회 속 이야기를 들으니 거버넌스 뿌리에 오너십이 있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창업주가 만든 이사회 문화는 시스템으로 굳어지기 쉽다. 세대가 바뀌며 쇄신하는 기업도 있지만 경영권 분쟁이나 주주 행동 등 성장통을 겪은 뒤에야 거버넌스 전반을 점검하는 곳이 많다. 최고의 의사결정을 내리기 위해 엄선한 사외이사진 역량을 100% 활용하고 있는지 기업 문화를 한 번 돌아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