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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보드 노트

임종룡에게 필요한 트로피

고진영 기자

2026-01-05 08:28:45

미식축구 최고의 명장은 누굴까. 그의 시대가 저물긴 했지만 열 중 아홉은 빌 벨리칙을 꼽는다. 똥 씹은 듯 좀 떨떠름한 얼굴로 유명한데 표정만큼이나 냉철한 전략가다. 전설적인 쿼터백 톰 브래디를 벨리칙이 발굴해냈다.

하지만 명성 만한 체면은 없는 편이다. 상대 팀 전술을 비디오카메라로 훔쳐봤다는 ‘스파이게이트’ 사건처럼 크고 작은 논란이 벨리칙을 따라 다녔다. 과정의 흠결에 대한 비난을 그는 언제나 결과의 위대함, 승리로 잠재웠다.

최근 우리금융지주가 임종룡 회장의 연임을 확정지었다. 금융권의 ‘이너 서클’ 논란 속에서 내려진 결정이니 어김없이 참호 구축이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현직 회장이 우호적인 이사회를 구축하고, 그 이사회를 방패로 장기 집권을 꾀한다는 비판이다.

하지만 이번 결정을 단순히 권력 연장이나 셀프 연임으로 치부하기엔 우리금융이 가진 구조적 맥락과 어긋난다. 우리금융은 4대 금융지주 중 유일하게 과점주주 체제라는 견제 장치가 작동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우리금융 사외이사 7명 중 4명은 과점주주 추천 이사로 이뤄져 있다. 키움증권, 한국투자증권, 푸본그룹, 유진PE 등 거대 자본이 파견한 인사들이다. 이사회 의장 역시 푸본 측 인사인 윤인섭 이사가 맡았다. 이사회가 임 회장의 안위보다 실적과 주가, 자본의 논리를 우선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실제로 임 회장은 취임 후 동양생명과 ABL생명을 패키지로 인수하고 10년 만에 증권업 재진출을 성사시켰다. 우리금융의 오랜 숙원이던 비은행 포트폴리오 확대의 물꼬를 텄다. 관료 출신 외부인이라는 태생 역시 30년 묵은 계파 갈등 봉합에 유리한 칼날이 됐다.

하지만 이런 방어 논리가 무색하게 비판적 시선은 여전해 보인다. 이유는 분명하다. 임 회장의 성과가 손태승 전 회장과 관련한 부당대출 의혹, 내부통제 실패라는 과오를 덮을 만큼 압도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임 체제에서 잉태된 부당대출이라 항변할 순 있겠으나 그 환부를 도려내고 수습하는 과정이 충분했는가라는 질문은 남았다.

그래서 이사회가 정당한 절차와 타당한 논리로 임 회장을 선택했더라도, 그 주장은 내부통제 실패의 벽 앞에서 힘을 잃는다. 벨리칙이 6개의 슈퍼볼 트로피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듯 임 회장 역시 과정이 아닌 결과의 법정에 섰다는 이야기다. 이제 그에게 필요한 조언은 벨리칙이 라커룸에서 선수들에게 되뇌었던 짧은 문장이다.

"Ignore the noise, Do your job(소음은 무시하고, 할 일을 하는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