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더보드 노트

슬기로운 세대교체

이돈섭 기자

2026-09-08 07:57:32

주식 상속과 증여 우회로가 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인적분할과 현물출자, 영리법인 유증, 일감 몰아주기, 전환사채 옵션 등을 활용해 상속 및 증여세 부담을 낮추거나 승계 과정에서 발생하는 지배력 희석을 완화하려는 시도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세법과 공정거래법, 상법의 규제가 강화되면서 상속 증여 우회로가 대부분 차단됐다. 시장에서는 지분을 있는 그대로 증여해야 하는 '정공법'만 남아있다는 푸념이 나온다.

기업 승계 과제를 맞닥뜨린 오너 입장에선 이사회 역할이 커진 점도 부담스럽다. 자녀들에게 기업을 승계하기 위해 회사를 분할하거나 계열사를 합병하려면 이사회를 설득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독립이사들은 상법 개정으로 주주 전체의 비례적 이익을 고려해야 한다. 과거와 같이 최대주주 이해관계에 밀접한 문제라고 해서 눈 감아 주기가 쉽지 않다는 뜻이다. 자칫 주주 소송에라도 걸리면 여간 골치아픈 게 아니다.

승계 작업은 경영권을 넘겨주는 절차를 포함하는 경우가 많다. 기업에는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있다. 승계 작업이 끝난 뒤 주가가 오르는 기업이 있는가 하면 떨어지는 기업도 있다. 누구나 기업 가치가 세대를 거듭하면서 꾸준히 오르길 기대하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경영 일선에 등판한 차세대 오너를 시장은 냉정하게 평가한다. 전문가들이 기업 승계 작업에 상당한 시간을 투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농우바이오(현 NH농우바이오)는 승계 실패 사례로 거론되는 기업 중 한 곳이다. 2013년 창업주 고희선 명예회장이 위독해지자 창업주 일가는 고 회장의 지분을 그의 아들이 소유한 법인에 유증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지금이야 상속인이 주주로 있는 영리법인이 재산을 유증받으면 상속인 보유 지분에 상응하는 상속세를 부담해야 하지만 당시 법인이 유증받은 재산에는 상속세(60%) 대신 법인세(20%)만 부과했다.

며칠 뒤 창업주는 별세했다. 창업주 일가는 1200억 상속세 부담에 직면했고 고민 끝에 지분을 매도했다. 시간을 넉넉히 잡고 승계 절차를 밟았더라면 어땠을까. 지금도 오너 대부분은 70대 전후 승계 고민을 시작한다고 한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베이비부머 세대 오너들이 속속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고 있다. 시간에 좇겨 승계 방정식에 끙끙대는 이들을 지켜보는 이사들의 마음 역시 편하지만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