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종희
KB금융지주 회장이 연임에 실패했다. 금융권이 뒤집혔다. 그럴 만도 했다. 양 회장 재임 기간
KB금융은 사상 최대 실적을 냈고 주가는 크게 올랐다. 다른 주요 금융지주 회장들이 줄줄이 연임한 터라 양 회장의 연임도 기정사실로 여겨졌다.
그런데 조금 이상하다. 양 회장은 회장후보추천위원회의 심사를 받는 후보 중 한 명이었다. 후보가 심사에서 탈락한 게 이렇게까지 놀랄 일일까.
독립이사 7명으로 구성된 회추위는 양 회장 대신 이재근
KB금융지주 부문장을 차기 회장 최종 후보로 골랐다. 과감한 변화와 세대교체가 필요하다고 했다. 두 사람의 나이 차가 5살에 불과해 세대교체라는 설명이 썩 와닿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독립이사들의 결정까지 이상한 일이 되는 건 아니다.
연임은 권리가 아니다. 첫 임기를 무난하게 이끌었다고 자동으로 한 번 더 기회를 주는 제도도 아니다. 실적이 좋으면 연임하고 사고를 치면 교체하는 식이라면 여러 후보를 두고 수개월 동안 심사할 이유가 없다. 재무제표를 펼쳐놓고 숫자가 가장 좋은 사람을 고르면 그만이다.
실적은 물론 중요하다. 다만 금융회사 실적에는 회장의 능력 외에도 금리와 환율, 증시와 부동산시장, 전임자가 짜놓은 사업구조가 함께 작용한다. 금융산업은 크고 작은 파고를 겪지만 자산과 이익 기반은 장기적으로 커져 왔다. 업황이 받쳐주면 큰 결정 없이도 최대 실적이 나고, 제대로 투자하고도 당장 실적은 나빠질 수 있다.
최대 실적을 냈다는 이유만으로 회장을 바꿀 수 없다면 회장은 대체 언제 바뀔 수 있을까. 지금의 성과를 지켜낸 사람과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들 사람은 다를 수 있다. 지난 3년을 잘 이끌었다는 평가와 앞으로 3년을 누구에게 맡길지는 별개의 판단이다. 그 판단을 하라고 이사회가 있다.
양 회장의 연임 불발을 두고 윤종규 전
KB금융지주 회장의 이름도 등장했다. 이 후보가 윤 전 회장 시절
KB금융지주 최고재무책임자(CFO)와
KB국민은행장을 지냈고, 당시 선임된 독립이사들이 회추위에 남아 있다는 이유에서다.
윤 전 회장은
KB금융을 9년간 이끌었다. 주요 경영진 가운데 그의 재임 시절을 거치지 않은 사람을 찾기가 더 어렵다. 이 후보를 중용한 것도 윤 전 회장이지만 양 회장을 부회장으로 키운 것도 윤 전 회장이다. 인연만으로 입김을 말하면 후보 누구를 골라도 결국 '윤종규'로 통한다.
정작
KB금융 내부 분위기는 예상보다 평온하다고 한다. 현직 회장의 탈락에도 조직이 크게 술렁이지 않는다. 내부가 조용하다고 모든 의심이 해소되는 건 아니다. 다만 뒤집힌 건 바깥이었고, 안은 생각보다 평온했다는 점은 곱씹어볼 만하다.
현직 회장을 연임시키면 거수기라 하고, 다른 후보를 선택하면 전임 회장의 뜻이 작용했다고 한다. 누구를 골라도 누군가의 사람으로 해석한다면 이사회가 독립성을 증명할 방법은 없다. 이번에 드러난 건 윤 전 회장의 영향력보다 이사회의 결정을 이사회의 것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금융권의 오래된 관습에 가깝다.
물론 이사회의 설명 책임은 남는다. 양 회장의 실적보다 무엇을 더 중요하게 봤는지, 이 후보가 어떤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는지는 주주에게 설명해야 한다. 권한을 행사한 만큼 선택의 결과에도 책임져야 한다.
다만 설명이 부족하다는 것과 누군가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건 별개다. 확인된 근거가 없다면 이번 인선은 독립이사들이 심사와 표결을 거쳐 다른 후보를 선택한 일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바뀌는 건 회장만이 아니다. 연임을 당연하게 여기던 금융권의 상식도 이제는 바뀔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