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7월 개정 상법 시행으로 자산 1000억원 이상 상장사의 사외이사는 '독립이사'로 이름이 바뀌었다. 의무 선임 비율도 이사 총수의 4분의 1 이상에서 3분의 1 이상으로 확대됐다. 충실의무
대상은 이미 지난해 '회사와 주주 전체'로 넓어졌다. 이사회의 경영진 견제 요구가 그만큼 커졌다.
정작 기업들은 독립이사를 뽑기 어렵다고 호소한다. 상장사 독립이사는 한 회사에서 6년, 계열사를 합쳐 9년을 넘겨 재직할 수 없다. 최대주주의 6촌 이내 혈족과 4촌 이내 인척도 맡을 수 없다. 미국과 일본에는 재직 기간 상한이 없고, 친인척 결격 범위도 미국은 직계가족, 일본은 2촌 이내다.
후보군이 좁다 보니 한 회사에서 임기를 채운 독립이사가 다른 회사로 자리를 옮기는 '돌려막기'가 반복된다. 기업들은 경영 경험이 풍부한 CEO 출신을 원하지만, 이들은 공정거래법상 계열편입 규제나 전 회사와의 관계 등을 이유로 합류를 꺼린다. 사외이사의 절반이 교수와 관료 출신으로 채워지는 이유다.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국내 상장사 사외이사 중 경영인 출신은 20%에 못 미친다. 미국 S&P500 기업은 70%대에 달한다.
해외 전문가 영입은 더 어렵다. 미국과 일본에는 겸직을 2곳으로 묶는 제한도, 연임 제한도 없다. 오래 머물 수 없고 보수는 적은데 법적 책임만 무거운 국내 독립이사 자리에 글로벌 전문가가 올 유인은 적다. 엔비디아에는 1993년 창업 때부터 이사회를 지켜온 독립이사가 2명이나 존재한다. 30년 넘게 회사와 함께한 만큼 이들의 말 한마디는 무게가 다르다. 회사를 누구보다 잘 아는 전문가의 연임을 굳이 막아야 할까.
재직 기간 상한과 결격 요건은 이사회가 거수기로 전락하지 않도록 만든 장치다. 하지만 독립성은 재직 기간을 일률적으로 묶는다고 생기지 않는다. 기간 상한은 이사회 평가와 공시로 보완하고, 결격 요건은 실질적인 이해상충 위주로 좁혀야 한다. 보수도 책임에 걸맞게 현실화할 필요가 있다. 독립이사의 역할을 키웠다면 그 자리에 들어올 문도 넓혀야 한다.
더벨은 매년 상장사 이사회를 구성과 다양성, 독립성 등 여러 측면에서 평가한다. 다양성은 해마다 평균 점수가 가장 낮은 영역 가운데 하나였다. 기업들은 여성과 연령 다양성은 대체로 갖췄지만, 경력과 국적 다양성까지 갖춘 곳은 드물었다. 제도의 문이 넓어진다면 이 성적표부터 달라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