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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보드 노트

사외이사와 뒷방 노인

김태영 기자

2026-02-25 07:46:48

“뒷방 노인네 만나서 뭐하시게요?”

현직 사외이사들의 이야기를 직접 듣기 위해 연락을 취하다보면 종종 이런 식의 답변을 받는다. ‘뒷방 노인네’ 외에도 ‘백수가 도움이 됩니까’, ‘늙은이를 왜’ 등의 배리에이션도 있다. 표현은 다르지만 의미는 하나다. 은퇴기에 접어든 무력감이다. 답변들이 워낙 비슷하다보니 가끔은 사외이사 업계의 공통된 분위기인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뒷방 노인이라는 용어가 완전히 익숙하지는 않아서 검색해봤다. 옛날에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집안의 권한을 물려주고 나면 뒷방으로 물러난다하여 생겼단다. 비슷한 말은 퇴물이라고 한다.

이들 대부분은 한때 ‘잘나가는’ 인사들이었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 사장 등 화려한 시절을 보냈다. 사실 지금 사외이사로 속한 기업들도 한 이름값 하는 곳들이 많다. 하지만 전성기에서 은퇴한 뒤 사외이사로 물러나니 스스로를 초라하게 느꼈을 것임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우리나라 사외이사직이 은퇴한 말년을 보내는 자리 정도로 여겨지는 것도 안타깝지만 공공연한 비밀이다.

그러나 사외이사는 엄연히 현직이며 백수가 아니다. 맡은 역할도 가볍지 않으므로 퇴물이라 볼 수도 없다. 주지하다시피 앞으로 국내 기업 지배구조 개선은 사외이사 제도를 중심으로 이뤄질 것이다. 사외이사들이 기업을 이끌어가는 한 축으로 거듭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들은 과거 사내이사로서 풍부한 이사회 경험을 갖추고 있으므로 사외이사로서도 활약할 공산이 크다. 하지만 스스로 퇴물 의식에 빠져있는 상태에서는 이런 장점들이 발현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물론 모든 사외이사들이 무기력감에 지쳐있는 것은 아니다. 현업 때처럼 열성적으로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노력하는 사외이사들도 종종 보았다. 다만 그 비중이 높지는 않은 것 같다.

감사위원 분리선출, 3%룰, 사외이사 단임제. 최근 사외이사 제도 개편이 분주하다. 그런데 제도만 고친다고 사외이사 문화가 더 나아질 수 있을까.

의식개선이 제도개선만큼 중요할 때가 있다. 아무리 제도를 고친다 한들 당사자들의 마음가짐이 바뀌지 않는다면 약효는 덜하다. 기업 거버넌스에 대한 관심이 온 나라에 높아지고 있는 지금, 사외이사들 역시 스스로 주인의식과 능동적인 사고를 가져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