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선 HD현대 회장이 부친인 정몽준 아산사회복지재단 이사장으로부터 지분 3.54%를 증여받기로 하면서 증여세만 3500억원 안팎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증여세 재원은 연부연납 제도를 활용하면서 HD현대 주식담보대출로 마련할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부터 HD현대 주가가 급등하면서 정 회장의 주식담보대출 여력도 커진 상황이다.
5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HD현대 최대주주인 정몽준 이사장은 내달 9일 정기선 HD현대 회장에게 HD현대 지분 3.54%(보통주 280만주)를 증여할 예정이다. 정 회장은 HD현대 지분 6.12%를 보유한 3대 주주로, 이번 증여를 마치면 지분율은 9.67%로 높아져 정 이사장에 이은 2대 주주가 된다.
이번 증여 규모는 현재 HD현대의 주가 수준을 고려하면 약 6000억원 수준이다. 최대 증여세율 50%에 더해 최대주주의 보유 주식에 적용되는 할증 20%를 반영하면 정 부회장이 부담해야 할 증여세도 3500억원 안팎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일반적으로 5년에 걸쳐 증여세를 분할 납부하는 연부연납 제도를 활용하면 연간 600억원 수준을 부담하게 된다.
HD현대의 주가가 고공행진을 거듭하면서 정 회장의 주식담보대출 여력이 커진 점도 증여세를 뒷받침할 수 있는 요인으로 꼽힌다. 지난해 초 약 6조~7조원 수준이었던 HD현대 시가총액은 주가 상승에 힘입어 현재 17조원대로 불어난 상태다. 이에 따라 지분 6.12%를 보유한 정 회장의 지분가치도 약 4000억원에서 1조원 수준으로 확대됐다.
정 회장이 보유한 HD현대 지분 6.12% 가운데 2.25%는 이미 질권이 설정돼
하나은행에서 담보대출을 받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와 함께 0.44%의 지분은 지난 2024년 서울서부지방법원에 공탁돼 담보로 활용할 수 없는 주식이다. 나머지 약 3.43%의 지분에 대해서는 신규 담보대출이 가능한 셈이다.
이는 현재 주가 기준 약 5800억원 규모로, 통상 주식담보대출의 담보인정비율(LTV)이 50% 수준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2900억원 가량의 대출여력을 의미한다. 정 회장이 부담하게 될 증여세를 충당하기에는 약 600억~700억원이 모자라지만, 정 회장이 HD현대로부터 수취하는 배당금만 연간 100억원을 웃돌아 이를 메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정 이사장으로부터 지분 3.54%를 증여받은 이후에는 3000억원 안팎의 신규 주식담보대출 여력도 생긴다. 이번 증여세는 물론, 향후 추가 증여에 대한 대응 자금으로 활용할 수 있는 구조다.
정몽준 이사장은 이번 증여 이후로도 지분율 23.06%를 보유해 HD현대 최대주주 지위를 유지한다. 정 이사장의 HD현대 지분가치는 총 3조9000억원 규모로, 이를 모두 증여할 경우 현재 주가 기준 약 2조3000억~2조4000억원가량의 증여세가 예상된다. 정기선 회장의 증여세 대응 여력을 고려하면 시간을 두고 단계적인 증여가 필요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이번 증여는 정기선 회장의 승계 보폭이 확대됐다는 의미도 있다. 정 회장은 지난해 10월 수석부회장에서 회장으로 승진하면서 사실상 HD현대그룹의 경영 최정점에 올랐다. 1년도 채 되지 않아 그룹 지주회사인 HD현대 지분율까지 높이면서 그룹에 대한 지배력을 굳혀 나가는 모습이다.
정 회장은 당초 현대중공업그룹이었던 그룹 사명을 지난 2022년 HD현대그룹으로 변경하는 등 경영 색채를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주력인 조선업 호황에 힘입어 HD현대그룹의 재계 순위도 2024년부터는
GS그룹을 제치고 8위로 올라선 상태다. HD현대를 비롯해
HD현대중공업,
HD현대일렉트릭 등 주요 계열사의 신용등급도 올해 AA급으로 올라서는 등 외형 확장과 함께 내실도 다져가는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