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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임 사외이사 'CEO 재도전' 의미는 KT 이사회 권력화?

현 이사회 내 네트워크 보유, 잦은 외풍으로 '경영진 결속력 약화' 영향

이돈섭 기자

2025-11-21 15:59:01

편집자주

기업 이사회는 회사의 업무 집행에 관한 사항을 결정하는 기구로서 이사 선임, 인수합병, 대규모 투자 등 주요 의사결정이 이뤄지는 곳이다. 경영권 분쟁, 합병·분할, 자금난 등 세간의 화두가 된 기업의 상황도 결국 이사회 결정에서 비롯된다. 그 결정에는 당연히 이사회 구성원들의 책임이 있다. 기업 이사회 구조와 변화, 의결 과정을 되짚어보며 이 같은 결정을 내리게 된 요인과 핵심 인물을 찾아보려 한다.
최근 KT는 차기 대표이사 공모를 마쳤다. 대표 공모에는 회사 안팎 33명의 인사들이 도전장을 던졌는데 이 가운데 2023년에 이어 두 번째 대표직에 도전하는 이들이 있어 눈길을 끈다. 차상균 서울대 명예교수(사진)와 박윤영 전 KT 사장이다. 이들 중 차 전 교수의 경우 과거 7년 간 KT 사외이사로 재직한 경험을 갖고 있다. 2002년 민영화가 이뤄진 이후 KT가 사외이사로 활동한 인사를 새 대표를 맞이한 적은 아직 한 번도 없다.

시장에선 전임 사외이사가 대표직에 도전한 사실이 실제 대표 선임 여부와 관계 없이 KT 거버넌스의 현 주소를 보여주는 것이라는 의견이 제기된다. 리더십이 바뀔 때마다 외풍이 불고 이사회가 힘을 키우면서 영향력을 확대해 온 결과라는 해석이다. 해외에서는 전임 사외이사가 그 기업 대표이사로 선임되는 경우가 종종 발견되는데 이는 자칫 기업 내부적으로 대표직 승계 시스템이 부재한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다시 한번 해볼만'…전임 사외이사의 폭넓은 네트워크

서울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한 그는 같은 학교 계측제어공학 석사 학위를 취득한 뒤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박사 학위를 땄다. 1992년 서울대 교수로 임용된 이후 2023년 정년 퇴임할 때까지 빅데이터연구원장과 데이터사이언스대학원장 등을 역임했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창업한 경험도 여럿 갖고 있다. 2022년 서울대 총장 선거에 입후보해 최종 3인 후보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지만 아쉽게 고배를 마시고 이듬해 대학을 떠났다.

교수직을 내려놓은 차 전 교수의 시선이 향한 곳은 KT였다. 차 전 교수는 2012년부터 2019년까지 KT 사외이사로 재직한 바 있다. 이명박 정부에서 박근혜 정부, 문재인 정부를 아우르는 이 시기 차 교수가 참여한 KT 이사회는 황창규 대표 체제를 출범시켰고 민영화 이후 처음으로 CEO의 연임도 성사시켰다. 당시 차 전 교수는 성장 산업으로의 재편과 거버넌스 투명화 제고 등을 향후 경영 중점 과제로 제시하기도 했다.

당시 KT는 윤경림 전 사장의 대표 후보 선임이 정치권 외압으로 무산되면서 사외이사 대부분이 이사회를 떠난 뒤 당시 여권 성향의 인물 중심으로 이사회가 재편된 직후였다. KT 대표는 외부 인사로 구성된 인선 자문단이 1차적으로 후보를 추려 숏리스트를 만들면 이사회가 최종 후보를 정해 주총에 올려 선임된다. 당시 자문단에는 과거 차 전 교수와 함께 KT 사외이사로 활동한 정해방 전 기획예산처 차관이 포함돼 있었다.

이 밖에 권오경 한양대 석좌교수와 정동일 연세대 교수 등이 자문단에 이름을 올렸는데 이들은 각각 미국 스탠퍼드대와 서울대 동문 사이였다. 차 전 교수는 김영섭 전 LG CNS 대표와 박윤영 전 KT 사장 등과 함께 숏리스트 진입에 성공했다. 당시 이사회에도 차 후보와 가까운 이들이 적지 않았다. 특히 최양희 사외이사의 경우 같은 서울대 공과대학 선·후배 사이이면서 서울대 교수로 30여년 간 함께 재직한 바 있다.

하지만 당시 이사회는 김 전 LG CNS 대표를 최종 대표 후보로 낙점했다. KT 경쟁사 주요 임원 출신을 대표 후보로 선임한 건 이례적이었다. 시장 관계자는 "최근 국감에서 KT 대표 선임 과정 외압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나온 만큼 외풍은 제한적일 것"이라며 "당시 최종 결선에 진출한 후보 입장에서는 다시 해볼 만 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사외이사 출신 대표 가뭄에 콩나듯…"KT라 가능한 시도"

차 전 교수가 KT 대표로 선임될 경우 그는 KT 최초 사외이사 출신 CEO가 된다. 국내에서 사외이사 출신 대표는 드물지만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신한투자증권 대표를 역임한 김병철 전 대표의 경우 KCGI 산하 케이글로벌자산운용 사외이사로 활동한 바 있는데 KCGI가 메리츠자산운용(현 KCGI자산운용)을 인수하고 이를 재출범시키는 과정에서 CEO로 발탁됐다. 박윤호 전 JT친애저축은행 대표는 과거 이곳의 사외이사와 감사로 활동했었다.

다만 아직까지 포스코와 KT&G 등 국내 주요 소유분산기업 중에서는 전임 사외이사가 대표에 취임한 사례는 없다. 산업계 관계자는 "국내 사외이사진은 대부분 학계나 정관계 인사가 많고 이들 중에는 실제 경영 경험을 갖고 있는 이가 드물다"면서 "많은 사람들이 사외이사가 자기 경력을 모두 마친 뒤 맡는 직책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어 사외이사 출신을 대표로 선임하는 데 심리적 거부감이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해외에서는 사외이사가 대표이사로 발탁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미국 항공기 제조 기업 보잉의 데이비드 칼훈(David Calhoun) 대표의 경우 과거 보잉의 사외이사로 활동하면서 이사회 의장을 맡기도 했다. 백화점 체인 기업 콜스의 마이클 벤더(Michael Bender) 대표도 과거 사외이사를 맡아 CEO 발탁 직전까지 이사회 의장으로 활동했다. 이사회 멤버로 활동하며 기업 전략과 사업 내용에 대한 이해도를 높였다는 평가다.

학계에서는 해외 사외이사 대부분이 C레벨 재직 경험을 갖고 있는 점이 이들의 대표 발탁을 용이하게 한다는 의견이 있다. 리더십 부재 상황이 닥쳤을 때 기업 사정을 잘 알고 경험이 풍부한 사외이사가 대표 자리에 올라 위기 확산을 조기에 막을 수 있다는 것. 반면 사외이사를 대표로 선임하는 것은 내부적으로 대표 승계 프로세스가 미흡하다는 신호로 읽혀 거버넌스 이슈로 부각될 수도 있다는 연구 결과도 소개돼 있다.

KT의 경우 특정 과점 주주 없이 소유가 분산돼 있는 데다 정부 기간산업에 주력하고 있는 특성이 있어 이례적으로 사외이사가 대표직에 도전할 수 있는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대표 교체 시기에 잦은 외풍으로 경영진 결속력이 약해지고 이사회 영향력이 강해진 결과라는 뜻이다. KT 전직 임원은 "국내 이사회 역할은 대개 제한적인데 전임 사외이사가 등판을 시도하는 건 그만큼 이사회 힘이 커졌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