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련의 상법 개정 이후 코스피 지수가 연일 고점을 경신하고 있지만 코스닥 시장은 상대적으로 소외되고 있다. 연초 이후 코스피 지수가 72% 상승한 데 반해 코스닥 지수는 37% 오르는 데 그쳤다. 시장에선 코스닥 시장 부진 주요 원인으로 '취약한 거버넌스'가 거론되곤 한다. 코스닥 상장사 대부분은 신생 상장 기업인데다 자산 규모도 작아 거버넌스 고도화가 이뤄지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물론 거버넌스 고도화의 동인이 떨어지는 가운데에서도 양호한 거버넌스를 보이는 코스닥 기업들도 다수 있다. 이들은 오너의 의지와 사업 성격, 주주 구성 등 다양한 동인으로 양질의 거버넌스를 구성하고 있다.
◇ 코스닥 상장사 대부분 자산 2조 미만, 규제 '무풍지대' 코스닥 상장사는 코스피 상장사에 비해 거버넌스 관련 규제가 느슨하게 적용되고 있다. 지난 6월 말 기준 코스닥 상장법인 1692곳 중 99.7%에 달하는 1687곳의 자산 규모가 2조원 미만이다. 이사회 내 사외이사 비중이 절반이 채 안 되고 감사위원회 대신 상근감사를 둔 곳이 대부분이다. 내년부터 코스피 상장사는 기업지배구조보고서를 매년 공시해야 하는데 코스닥 상장사의 경우 공시 의무에서 벗어나 있다.
올 하반기 상법 개정으로 전격 도입된 집중투표제와 감사위원 분리선출 제도의 경우 역시 자산 2조원 이상 법인에 의무 적용토록 하고 있어 대부분 코스닥 상장사는 해당 제도를 도입하지 않아도 된다. 전자투표제 도입 역시 코스피 상장사와 달리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배당 등 주주환원 정책 공시를 비롯해 향후 의무화가 검토되고 있는 영문 공시
대상에서 코스닥 상장사는 배제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이 같은 제도 환경은 취약한 거버넌스로 이어진다. 실질적 지배력을 가진 최대주주가 대표직을 맡고 이사회에도 참여하며 소유와 경영을 일체화시킨 경우는 허다하다. 법이 정한 최소 요건만 충족하는 선에서 사외이사를 선임하는 경우도 많다. 그마저도 최대주주 동문 출신이나 경영 전문성을 찾기 힘든 정치인, 특정 학교 출신 인사만을 고집해 이사회 독립성이 저해되고 있다는 지적이 시장에서 끊이지 않는다.
메가스터디는 최대주주 손주은 회장의 같은 출신 대학 같은 과 동년배 동문들을 사외이사로 기용해 이사회를 꾸렸다. 메가스터디 사외이사 임기를 마친 한 사외이사는 계열사 이사회로 이동해 사외이사 활동을 계속해서 이어갔다. 비비안은 지자체 다선 시의원과 전직 국회의원 등 정치인들을 이사회에 들였고
동진쎄미켐은 서울대 출신 오너가 일원 요건에 맞춰 20여년 간 같은 학교 출신 인사만을 기용해왔다.
올 상반기 말 기준 theBoard가 시총 상위 상장사 500개
대상으로 실시한 이사회 평가에서 코스닥 상장사 중 점수 상위 100위 안에 진입한 곳은
클래시스가 유일했다. 서울의 한 종합대학 경영학과 교수는 "코스닥 상장사 4곳 중 1곳이 상장한지 5년이 채 지나지 않아 창업주 지배력이 강한 영향도 있을 것"이라며 "코스닥 상장사는 각종 규제에서도 자유로워 이를 견제할 동인이 약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 이사회 고도화 성과 뒤에는 오너 '의지'와 외부 '공격'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버넌스 개선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상장사들이 코스닥 시장에 아주 없는 건 아니다. 최대주주가 이사회 경영에 의욕을 보이면서 주요 의사결정 과정에서 사외이사 참여를 독려하는 곳이 있는가 하면 펀드의 주주 행동주의 공격을 계기로 거버넌스를 개편한 곳도 있다. 대기업 집단 계열사인 경우 그룹 거버넌스 지침에 따라 비교적
선진화된 거버넌스를 구축한 곳도 눈에 띈다.
기업 오너가 이사회 경영에 상당한 자원을 투입하고 있는 상장사로는
파크시스템스가 대표적이다. 지분 32%가량을 보유하고 있는 박상일 대표는 미국에서 창업을 해본 경험을 바탕으로 2007년
파크시스템스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지난 6월 말 기준 자산 2780억원의
파크시스템스는 이사회 내 사외이사 비중을 25% 수준으로 유지하면 그만이지만 이사회 경영을 표방하며 71% 선까지 끌어올렸다.
에스엠의 경우 외부 펀드와 경영권 분쟁을 겪으면서 창업주가 떠나고 그 자리에 새로운 주주가 앉으면서 거버넌스가 일대 변혁기를 맞았다. 지금은
카카오그룹을 최대주주로 들인 에스엠은 이사회 절반 이상을 사외이사로 채우는 한편 사외이사를 이사회 의장으로 선임하고 사외이사들로 하여금 각종 이사회 산하 소위원회 운영을 주도케 하면서 이사회 중심 경영이 자리를 잡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콜마그룹 계열사
HK이노엔의 경우 모회사 영향으로 이사회 구성을 상당수준 고도화했다.
동아쏘시오홀딩스 산하의
에스티팜 역시 지주사 거버넌스 방침에 따라 일반 코스닥 상장사보다 우수한 거버넌스 행태를 기록하고 있다. 다만 이들 기업의 경우 이사회 운영 규정 등을 세부적으로 구축했다고 하더라도 실질적으로 해당 기업 이사회에서 의사결정이 독립적으로 이뤄지고 있는지는 두고봐야 한다.
다만 해당 기업들의 경우 아무리 거버넌스 고도화에 힘을 쏟았다고 하더라도 코스피 대형 상장사에 비해 고도화 수준이 낮은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주주에 대한 이사회 책임을 강화한 상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이후 코스피 대형 상장사 중심으로 주가가 지속적인 상승세를 기록해 온 것은 코스닥 기업 거버넌스 개선 노력의 한계를 방증한다는 의견도 시장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