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은 올해도 활발한 리밸런싱 작업을 이어갔다. 계열사 합병 및 지분 매각을 통해 핵심 사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이 과정에서 계열사 지배구조도 큰 폭의 변동을 겪었다.
가장 눈에 띄는 활동을 펼친 건
SK이노베이션이다. 자회사 SK온과 SK엔무브를 합병하기 위해 대규모 자금조달을 잇달아 진행했다. SK에코플랜트도 자회사 매각을 추진하며 체질 개선에 속도를 냈다.
SK스퀘어가 11번가 재무적투자자(FI) 투자금을 상환하며 자본시장 신뢰를 지킨 부분도 주목할 만한 포인트였다. ㈜SK는 연초 SK스페셜티 매각 종료 이후 연말 SK실트론 매각 카드를 다시 꺼내 들었다. 이를 고려하면 내년에도 SK그룹 리밸런싱 기조는 지속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SK온-SK엔무브 합병 성사, 배터리사업 살리기 총력
SK이노베이션의 리밸런싱 키워드는 올해도 ‘SK온 구하기’였다. 자회사인 SK온은 전기차 시장의 일시적 수요 둔화(캐즘)로 어려움을 겪었다. 작년 말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 SK엔텀과 합병하며 외형과 수익성을 모두 강화했지만 추가 지원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됐다.
SK이노베이션이 올해 꺼내든 카드는 자회사 중 핵심 캐시카우인 SK엔무브와 SK온의 합병이었다. 올 11월 관련 절차가 완료되면서 통합 SK온이 출범했다. SK엔무브는 SK온에 흡수합병된 이후 사내독립기업(CIC) 형태로 남았다.
SK이노베이션은 이번 합병을 위해 FI인 IMM크레딧앤솔루션(ICS)이 보유한 지분 30%를 사들여 SK엔무브를 100% 자회사로 만들었다. 올해 중복상장 심사가 강화되면서 SK엔무브 기업공개(IPO)가 무산된 점이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IPO를 통한 엑시트가 어려워지자 FI도 SK엔무브 지분을 되파는 데 합의했다.
SK이노베이션은 SK엔무브 지분을 사들이는 동시에 SK온 FI인 MBK파트너스 컨소시엄, 한국투자프라이빗에쿼티 컨소시엄 등의 투자금도 함께 상환하는 절차를 밟았다. 이를 통해 SK온과 SK엔무브의 지분을 모두 확보하면서 합병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불확실성을 최소화했다.
FI의 투자금을 상환하기 위한 재원 마련은 증권사와 주가수익스와프(PRS) 계약 체결, 신종자본증권 발행에 더해
SK이노베이션이 보유한 액화천연가스(LNG) 관련 자산을 유동화하는 형태로 이뤄졌다. LNG 발전소 관련 지분은
메리츠증권이,
보령LNG터미널 지분은 IMM인베스트먼트가 인수자로 각각 결정됐다.
◇SK에코플랜트 포트폴리오 전환, ㈜SK도 리밸런싱 속도
SK에코플랜트도 올해 자회사 포트폴리오를 기존 환경업에서 반도체 밸류체인으로 바꾸는 데 집중했다. 올해 SK에어플러스, 에센코어, SK트리켐, SK레조낙, SK머티리얼즈제이엔씨, SK머티리얼즈퍼포먼스 등을 자회사로 편입하는 절차를 완료했다.
기존 환경 자회사인 리뉴원, 리뉴어스, 리뉴에너지충북 등은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를 인수자로 선정하고 매각 절차를 완료했다. SK에코플랜트는 2020년 어펄마캐피탈로부터 EMC홀딩스를 인수한 이후 다수 환경기업을 추가로 사들였다. 이후 이들 기업을 재편해 환경자회사 3사 체제를 구축했지만 이번 매각으로 환경업을 주요 포트폴리오에서 제외하게 됐다.
SK는 올 3월 반도체 특수가스업체인 SK스페셜티 지분 85%를 한앤컴퍼니에 2조7000억원에 매각하는 절차를 완료했다. 지분 15%는 SK스페셜티의 성장성과
SK하이닉스 등 그룹 반도체 계열사와 시너지를 고려해 계속 보유하기로 결정했다.
연말에는 반도체 웨이퍼 제조업체인 SK실트론 지분 70.6% 매각 우선협상
대상자로
두산그룹을 선정하고 후속 절차를 진행 중이다. SK실트론 기업가치가 최대 5조원대까지 거론되는 점을 고려하면 내년 중 2조원대 현금이 추가로 ㈜SK로 유입될 전망이다.
◇11번가의 SK플래닛 귀환, 자본시장 신뢰 회복은 성과
SK스퀘어는 지난달 자회사 11번가를 또 다른 자회사 SK플래닛에 4673억원에 매각했다. SK플래닛의 11번가 인수대금 중 3900억원은
SK스퀘어의 출자를 통해 마련됐다.
SK스퀘어가 11번가를 매각하는데 인수자의 인수대금을 지원하는 이례적 구조다.
이러한 구조는
SK스퀘어가 11번가 FI인 국민연금, 새마을금고, H&Q코리아 등의 투자금 5000억원을 상환하기 위해 고안됐다. 결과적으로
SK스퀘어는 FI 투자금을 자기 자금으로 갚고 11번가를 손자회사로 두게 됐다. 11번가는 2018년 SK플래닛에서 독립한 이후 7년여 만에 SK플래닛 품으로 돌아갔다.
이번 투자금 상환으로
SK스퀘어는 적지 않은 재무적 부담을 지게 됐다. 별도 현금 유입 없이 3900억원 규모의 지출을 했기 때문이다.
SK플래닛도 최근 영업부진으로 자본금 감소 등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11번가를 회생시켜야 한다는 중책을 맡게 됐다.
하지만 FI 투자금 상환으로
SK그룹에 대한 자본시장의 신뢰는 회복됐다는 평가다.
SK그룹은 그동안 자본시장으로부터 조달한 자금으로 주요 사업을 재편하고 신성장 동력을 발굴하는 리밸런싱을 추진해왔다. 11번가 투자금 미상환 사태가 장기화된다면 현재 추진 중인 리밸런싱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의견이 적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