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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화페인트, 3세 김현정 부사장이 선택한 우군 '일본 CMP'

승계 국면 앞두고 5% 상당 자사주 지분 츄고쿠 마린 페인트로 매각해 의결권 부활

김형락 기자

2025-12-26 09:33:48

편집자주

기업 이사회는 회사의 업무 집행에 관한 사항을 결정하는 기구로서 이사 선임, 인수합병, 대규모 투자 등 주요 의사결정이 이뤄지는 곳이다. 경영권 분쟁, 합병·분할, 자금난 등 세간의 화두가 된 기업의 상황도 결국 이사회 결정에서 비롯된다. 그 결정에는 당연히 이사회 구성원들의 책임이 있다. 기업 이사회 구조와 변화, 의결 과정을 되짚어보며 이 같은 결정을 내리게 된 요인과 핵심 인물을 찾아보려 한다.
삼화페인트공업(삼화페인트)이 창업 가문 간 경영권 분쟁 불씨가 재점화하는 걸 막기 위해 지분 5% 상당 자사주를 백기사에게 넘겼다. 5년 전부터 경영 수업을 받고있는 3세 경영주자 김현정 부사장이 삼화페인트 사내이사로 활동하면서 이사회 장악력을 지닌 덕분에 의사결정을 주도할 수 있었다. 김 부사장은 갑작스러운 부친 작고로 이른 나이에 경영권을 승계받게 됐다.

삼화페인트는 지난 1일 지분 5.07%에 해당하는 자사주 138만주를 일본 츄고쿠 마린 페인트(CMP)에 시간 외 대량 매매(블록딜)로 처분했다. 주당 처분가액은 지난달 이사회 결의일 종가인 5790원이다. 츄고쿠 마린 페인트는 80억원 들여 삼화페인트 자사주를 매수했다. 기존에 삼화페인트 지분 4.12%를 보유하고 있어 단숨에 지분 9.19%를 보유한 2대주주로 등극했다.

자본·사업 제휴 계약에 따라 삼화페인트도 츄고쿠 마린 페인트 지분을 취득해야 한다. 삼화페인트는 늦어도 내년 9월까지 도쿄증권거래소에서 이번 자사주 매각 대금과 동일한 가치의 츄고쿠 마린 페인트 주식을 매입해야 한다.


삼화페인트는 지난달 28일 이사회에서 만장일치로 자사주 처분 안건을 가결했다. 시설자금 69억원을 조달하기 위해 나머지 자사주 100만8642주(지분 3.91%)를 교환 대상으로 하는 22회차 사모 교환사채 발행도 결정했다.

당일 이사회에는 고(故) 김장연 삼화페인트 회장을 제외한 나머지 이사진 6명이 참석했다. 사내이사는 배맹달 대표이사(사장) 겸 이사회 의장, 류기봉 대표이사(사장), 김 회장 딸인 김현정 경영지원부문 부사장이다. 사외이사는 이정훈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심달훈 우린 조세파트너 대표다.

삼화페인트 이사회는 국회에서 자사주 소각을 의무화하는 상법 개정 논의 한창인 시기에 자사주 의결권을 부활시켰다. 지난 16일 김장연 회장이 별세하면서 승계 국면에 들어간 김 부사장에게 우군이 필요했다. 지난 9월 말 기준 김 부사장이 보유한 삼화페인트 지분은 3.04%다. 경영권을 지키려면 부친인 김 회장이 보유한 최대주주 지분(22.76%)을 상속해야 한다. 김 부사장은 상속세 연부연납 등을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삼화페인트는 고 김복규 회장과 고 윤희중 회장이 1946년 공동 창업한 동화산업(현 삼화페인트)이 뿌리다. 지금도 두 창업 가문이 지분을 나눠 들고 있다. 김복규 회장 아들인 김장연 회장 측 지분은 27.39%다. 윤희중 회장 장남인 윤석천 전 동신하이텍 대표이사(5.52%)와 3남 윤석재 컨택모빌리티 대표이사(6.9%)가 보유한 지분을 합하면 12.42%다.

삼화페인트는 창업 2세까지 김 씨와 윤 씨 일가가 공동 경영했다. 2007년 3월까지 김장연, 윤석영 각자 대표 체제였다. 고 윤석영 대표는 윤희중 회장 차남이다. 삼화페인트 이사회가 2007년 2월 주주총회에 윤석영 전 대표를 사내이사 재선임 후보로 추천하지 않으면서 김장연 회장이 경영권을 쥐었다.

이후 양측 갈등이 불거지기도 했다. 2013년 삼화페인트가 200억원 규모 분리형 사모 신주인수권부사채(BW) 발행을 결정하자 윤석영 전 대표 부인인 박순옥 씨가 BW 발행 무효 소송을 제기했다. 2015년 대법원은 BW 발행 타당성을 인정하며 김장연 회장 손을 들어줬다.

세계적인 선박 도료 기업인 츄고쿠 마린 페인트는 삼화페인트의 오랜 사업 파트너다. 삼화페인트와 츄고쿠 마린 페인트는 1988년 합작 법인 츄고쿠삼화페인트를 세웠다. 김장연 회장이 츄고쿠삼화페인트 이사(2000~2008년)로 활동하며 우호 관계를 쌓았다. 츄고쿠삼화페인트 지분은 츄고쿠도료(59.46%)와 삼화페인트(관계회사 포함 16.24%)가 나눠 들고 있다. 츄고쿠삼화페인트는 지난해 매출 1977억원, 영업이익 224억원을 기록했다.

김현정 부사장은 1985년생으로 올해 40세다. 고려대학교와 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졸업하고, 한국공인회계사(2012년)와 대한민국 변호사(2018년)로 등록한 수재다. 김 부사장이 주요 주주로 있던 전자재료 도소매 기업 이노에프앤씨 관리본부장(2018~2019년)을 거쳐 2019년 삼화페인트에 글로벌전략지원 상무로 합류했다. 지난 3월 주총에서 삼화페인트 사내이사로 신규 선임됐다.

삼화페인트는 "츄고쿠 마린 페인트와 사업 제휴·개별 업무 협약을 통해 장기적인 파트너십 구축과 상호 시너지 창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며 "이번 자사주 매각은 협력 관계를 보다 공고히 하기 위한 일환"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