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업의 이사회 운영 실태를 놓고 제도적으로는 개선되고 있으나 형식에만 치중한 나머지 글로벌 표준과 비교하면 미흡한 부분이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선진국들 중 영국의 모델을 참고해 이사회의 거버넌스를 개혁할 필요가 있으며 이 과정에서 실질적 견제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는 제언이 뒤따랐다.
서현정 더보드파트너스 대표(사진)는 26일 서울 중구 더플라자호텔에서 열린 '2026 더보드 포럼(2026 theBoard Forum)'에서 '사외이사제도 국내와 해외 비교'를 주제로 발표를 진행했다.
서 대표는 한국·미국·영국·독일·일본 등 5개 나라에서 운영 중인 사외이사(독립이사) 제도의 구조와 정량지표 등을 비교 분석하고 한국과 기타 선진국 사이에 격차가 존재함을 진단했다. 이어 글로벌 트렌드와 혁신적 운영 사례를 바탕으로 국내 기업들에 실천 방향과 로드맵을 제시했다.
서현정 더보드파트너스 대표가 26일 서울 중구 더플라자호텔에서 열린 '2026 더보드 포럼(2026 theBoard Forum)'에서 '사외이사제도 국내와 해외 비교'를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지표로 본 한국 이사회, 규모·독립성·견제기능 등 약점
2024년 조사 기준으로 한국 기업들의 평균 이사회 규모는 6.4명으로 5개국 중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규모가 가장 큰 독일의 16.5명과는 물론이고 4번째인 일본의 9.8명과도 격차가 확연했다. 이사회에서 사외이사가 차지하는 비율도 한국이 52%로 미국(85%)과 독일(68%), 영국(63%) 등에 미치지 못했다.
서 대표는 "한국 기업들의 이사회 규모가 글로벌 평균 대비 약 60% 수준에 불과해 다양한 전문성을 보유한 이사를 확보하는 데 물리적 제약이 있을 수 있다"며 "이사회의 견제 기능 역시 한국 기업들이 글로벌 대비 미흡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이사회의 독립성과 관련해서도 상법 개정으로 제도는 진전하고 있으나 실질적 독립성은 확보되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단적으로 한국 기업들의 이사회는 안건 가결률이 99.8%로 사실상 거수기 역할을 수행하는 데 그친다.
서 대표는 사추위가 존재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대주주나 경영진이 사외이사 후보를 내정하는 일이 빈번하다는 점, 사외이사 임기에 법적으로 6년의 제한이 있으나 계열사 이동이나 편법 재선임을 통해 장기 재직하는 사례가 나타난다는 점, 이사회 평가 시스템이 미흡하다는 점 등을 실질적 독립성 공백의 원인으로 진단했다.
서 대표는 △독립성 △선임 절차 △임기 제한 등 요소를 기준으로 한국·미국·영국 등 3개국의 이사회 제도를 비교했다. 한국은 형식적 요건의 충족을 중시하는 반면 미국은 시장의 감시를 중심으로 운영된다. 영국의 경우는 원칙을 준수하되 원칙을 벗어날 경우 공시 등 설명을 의무화한다.
이를 바탕으로 서 교수는 "한국 기업에 가장 적용이 용이한 것은 영국형 모델"이라며 "원칙 준수와 설명 중심의 모델을 도입해 유연성을 확보하되 9년 룰(사외이사의 독립성 상실 기준)과 의장 독립성 의무(CEO와 의장의 분리) 등을 통해 실질적 견제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사회 거버넌스, 글로벌 트렌드 참고해 개혁해야
서 대표는 한국 기업 이사회의 거버넌스 개혁 필요성을 주장하며 글로벌 이사회의 트렌드를 △ESG △내부통제 △AI 등 3대 핵심 어젠다로 소개했다. 먼저 글로벌 기업들의 이사회는 ESG에 대해 높은 전문성을 요구받는다. 때문에 기후변화나 공급망, 인권 리스크에 대한 실질적 감독 역량을 갖출 필요가 있다.
영국에서는 재무·운영·컴플라이언스(준법) 등 폭넓은 영역의 내부통제와 관련해 이사회가 통제 효과를 모니터링하고 미비점에 대한 개선 계획을 공시하도록 하고 있다. 생성형 인공지능(AI)의 산업 도입이 늘면서 그에 따른 윤리적·법적 리스크를 감독하기 위한 전담 조직을 이사회 내에 설치하도록 요구하는 나라도 있다.
개별기업의 혁신적 운영 사례도 소개했다. 구찌는 20~30대 젊은 직원들로 자문 이사회를 구성하는 '섀도 보드(그림자 이사회)' 제도를 도입해 경영진에게 디지털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역할을 맡겼다. 제도 도입으로부터 4년 뒤 구찌의 매출은 136% 급증했다. 반면 같은 기간 제도를 도입하지 않은 경쟁사는 매출이 11.5% 감소했다.
이와 같은 글로벌 사례들을 바탕으로 서 대표는 단기적으로(0~3개월) 운영을 효율화하고 중기적으로(3~12개월) 제도적 독립성을 강화한 뒤 장기적으로는(12~24개월) 전문성을 강화하는 거버넌스 개혁 로드맵을 제시했다.
먼저 운영 효율화를 위해 불필요한 보고 안건을 축소하고 보드팩의 정보를 이사회가 결정할 질문 중심으로 구성할 것을 주문했다. 제도적 독립성의 강화 방안으로는 경영진 없는 사외이사만의 회의 정례화와 이사회 평가제도의 파일럿 도입 등을 제시했다. 그 뒤 외부 평가의 정례화, 이사회 구성원의 다양성 제고, 기술위원회 설치 등으로 전문성을 강화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