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정기 주주총회 시즌에서도 어김없이 이사회 출석률이 도마 위에 올랐다. 국민연금은 일부 기업 이사들의 저조한 출석률을 문제 삼으며 반대 의견을 냈다. 출석은 그 자체로 능력을 증명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출석조차 하지 않는 이사가 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이사회는 회사의 전략과 리스크를 논의하는 자리다. 그 자리에 없다는 것은 해당 역할에서 스스로 빠져 있음을 의미한다.
흥미로운 점은 물리적 거리가 더 이상 출석을 가로막는 이유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과거 한 상장사의 사례를 취재하는 과정에서 해외에 거주하는 이사가 연간 이사회에 거의 빠짐없이 참석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한 적이 있다. 그는 미국에 상주하는 공대 교수였지만 화상회의를 통해 이사회에 참여했다. 회사는 사전에 충분한 자료를 제공했고 회의 역시 원격 환경에 맞춰 운영됐다. 결과적으로 그의 출석률은 100%에 가까웠다.
이 사례는 단순한 미담이 아니다. 기술적 제약이 사라진 환경에서 출석률은 의지의 문제에 더 가까워졌다는 점을 보여준다. 참석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참석하지 않는 선택을 한 결과일 수 있다는 의미다.
물론 출석률이 높다고 해서 곧바로 좋은 이사회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형식적으로 자리를 채우는 것과 실질적으로 의견을 개진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하지만 출석은 그 모든 것의 출발점이다. 출석하지 않는 이사는 질문이나 반대, 책임을 질 수도 없다.
국민연금이 출석률을 문제 삼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단순히 숫자를 관리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이사회가 최소한의 작동 요건을 갖추고 있는지를 보겠다는 것이다. 특히 장기 연임, 겸직 과다, 전문성 부족과 같은 문제와 결합될 경우 낮은 출석률은 이사회 무력화의 신호로 읽힐 수 있다.
기업 입장에서도 더 이상 출석률을 가볍게 넘길 수 없는 환경이 됐다. 원격회의 인프라는 이미 충분히 갖춰져 있고 글로벌 기업들은 시차를 넘나드는 이사회 운영을 일상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복적으로 결석이 발생한다면 이는 시스템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와 인사의 문제일 가능성이 높다. 이사회는 앉아 있는 자리 이전에 참여하고 판단하는 자리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결국 회의실에 들어오는 것에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