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총회 안건 대부분은 조용히 통과된다. 9할 이상의 압도적 찬성표가 쏟아지는 게 대부분이다. 2026년 정기주총에선 다른 모습이 보인다. 이사 보수 한도, 사외이사 개별 선임, 자기주식 처분 계획 등 과거엔 형식적이었던 안건들이 팽팽한 표 대결로 번지거나 부결로 끝났다. 상법 개정이 진행되고 집중투표제·자기주식·이사 독립성 등 지배구조 쟁점이 수면 위로 올라왔기 때문이다. 더벨은 국민연금을 비롯해 기관투자자와 주요주주들의 의결권 행사 내역을 토대로 주주총회 의결권이 갖는 의미를 진단해본다.
국민연금이 올 정기주주총회 시즌을 맞아 5곳의 상장사에서 이사 후보의 과도한 겸임을 이유로 반대 의결권을 행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복수의 등기임원직을 보유하는 관행이 이사 충실의무와 주주권익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판단했다.
국민연금의 이번 반대 의결권 행사는 오너와 전문경영인을 가리지 않고 이뤄졌다. 겸직을 지적받은 비오너가 출신 임원은 지주에서 경영총괄, CFO 등을 맡은 전문경영인이다.
◇해마다 이어지는 오너일가 겸직 지적
국민연금이 과도한 겸임을 문제 삼은 기업은 세방전지, ㈜GS, 세아베스틸지주, HS효성첨단소재, 에스앤티다이내믹스 등 5곳이다. 이 가운데 오너일가의 겸임을 지적받은 곳은 3곳이다.
세방전지에서는 사내이사 후보로 오른 이상웅 세방그룹 회장이 도마에 올랐다. 그는 세방전지 이외에도 세방, 이앤에스글로벌, 세방익스프레스, 세방산업, 세방메탈트레이딩, 세방리튬배터리 등 6곳의 계열사에서 사내이사 자리를 맡고 있다. 이 회장은 E&S글로벌을 정점으로 세방, 세방전지·세방리튬배터리 등 계열사로 이어지는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오너 2세다. E&S글로벌은 사실상 이 회장의 개인회사로 평가된다.
세방전지 오너일가에 대한 과도한 겸임 문제 지적은 10년이 넘었다. 국민연금은 2014년 이상웅 회장의 아버지이자 창업주인 이의순 명예회장을 시작으로 2017년, 2019년, 2020년, 2021년, 2022년, 2025년, 2026년 등 오너일가의 사내이사 선임 안건이 올라올 때마다 반대표를 던져왔다.
국민연금은 HS효성그룹 오너인 조현상 부회장의 HS효성첨단소재 사내이사 선임에도 반대했다. 올해 그는 지난해까지 맡았던 HS효성의 대표를 내려놓긴 했지만 여전히 미등기임원으로 남아있다.
조 부회장은 기업가치 훼손 및 주주권익 침해 이력이 있다는 점도 지적받았다. 조현상 부회장은 이른바 '집사 게이트'와 관련해 업무상 배임 혐의를 받고 있다. 의혹의 핵심은 김건희 여사의 집사로 알려진 김예성씨가 설립에 관여한 렌터카 업체 IMS모빌리티가 자본잠식 상태임에도 대기업과 금융·투자사 9곳으로부터 총 184억 원을 투자받았다는 것이다. HS효성 계열사 4곳은 이 중 35억 원을 투자했다.
SNT다이내믹스에서는 김도환 대표의 사내이사 선임에 반대표가 발생했다. 국민연금은 앞서 2025년 주총에서도 같은 이유로 반대표를 행사했다. 김도환 대표는 최평규 SNT홀딩스 회장의 맏사위로 최은혜씨와 2007년 결혼했다. 변호사 출신인 그는 사법고시 40회 합격 후 우리투자증권을 거쳐 2008년 SNT홀딩스에 입사했으며 2017년 2월 주주총회에서 대표이사로 선임됐다.
그는 그룹의 주요 계열사 이사회에 이사로 이름을 올리며 경영에 관여해왔다. 2024년 말 기준으로도 SNT홀딩스 대표, SNT에너지·SNT다이내믹스·SNT저축은행 사내이사, 운해연구원 사내이사, SNT AMT 감사 등 6개 직위를 겸직하고 있었다. 이후 2025년 말에는 운해연구원에서 사내이사에서 대표이사로 격상되고 SNT로보틱스 사내이사까지 추가되며 겸직 범위가 더욱 넓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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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직 지적 전문경영인, 지주서 재무 및 경영 맡아
전문경영인의 겸임이 문제가 된 곳도 있다. ㈜GS에서는 홍순기 부회장이 겸임 문제로 지적됐다. 홍순기 부회장은 허태수 회장과 함께 ㈜GS의 공동 대표이사 사내이사로 재직 중이며 2024년 말 부회장으로 승진한 전문경영인이다.
2026년 기준 GS그룹 부회장 가운데 오너일가가 아닌 인물은 홍 부회장 뿐이다. 그는 허태수 회장이 취임한 2020년 이후 GS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대표를 맡기 전 그는 2008년 12월부터 2019년까지 11년 동안 CFO 자리를 담당했다.
2025년 말 기준 홍 부회장은 ㈜GS와 함께 파르나스호텔 기타비상무이사, 지에스스포츠 사내이사, 지에스리테일 기타비상무이사, 지에스이앤알 기타비상무이사, 지에스에너지 기타비상무이사, 지에스칼텍스 기타비상무이사 등을 겸임하고 있다.
세아베스틸지주의 박성준 사내이사는 연세대 경영학과 출신으로 삼일회계법인 딜 본부와 세아홀딩스 성과관리팀장, 혁신센터팀장 등을 거쳤다. 그는 세아홀딩스 경영총괄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