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을 움직이는 힘은 무엇인가. 과거에는 뛰어난 개인 역량에 의존했다. 총수의 의사결정에 명운이 갈렸다. 오너와 그 직속 조직이 효율성 위주의 성장을 추구했다. 하지만 투명성을 중시하는 시대로 접어들면서 시스템 경영이 대세로 떠올랐다. 정당성을 부여받고 감시와 견제 기능을 담보할 수 있는 이사회 중심 경영은 피할 수 없는 흐름이다. 이사회에 대한 분석과 모니터링은 기업과 자본시장을 이해하는 중요한 척도다. 기업 이사회 변천사와 시스템 분석을 통해 바람직한 거버넌스를 분석해 본다.
한화오션이 캐나다 잠수함 수주 최종전에서 독일의 티센 크루프 마린 시스템(TKMS)에 고배를 마셨다. 독일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가입국 지위가 결정적이었다는 분석이 나오는 가운데 각사 이사회 구성에도 관심이 쏠린다.
TKMS는 이사회에 사외이사(독립이사)를 적게 두고 있다. 다만 사외이사 중에서 전직 군인 비중을 높게 가져가는 모습을 보인다. 반면 한화오션은 전형적인 한국 대기업 이사회처럼 관료와 교수 출신 비중이 높다. 다만 한화오션은 미국 전직 대통령의 친척을 사외이사로 둬 대 미국 로비력을 높이려는 모습을 보였다.
TKMS는 독일 상장사로서 관련법에 따라 경영이사회(Management board)와 감독이사회(Supervisory board)로 이사회를 양분하고 있다. 회사를 실제 경영하는 것은 경영이사회지만 경영이사회에 대한 인사 임면권, 성과보상결정권, 감시권은 모두 감독이사회가 쥐고 있다. 우리나라로 치면 경영이사회를 사내이사 중심, 감독이사회를 사외이사 중심의 의사결정기구로 볼 수 있다.
특이한 점은 독일 상장사 감독이사회에는 사내이사가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TKMS 감독이사회는 총 9명으로 구성돼 있다. 이 중 사내이사가 5명, 사외이사가 4명이다. 오히려 사외이사가 적은 편이다.
이 4명의 사외이사 가운데 전직 군인이 2명이다. 이들은 육군과 해군 모두에서 몸담았지만 대표 경력은 해군으로 분류된다.
프랭크 렌스키 독립이사는 1981년부터 2025년까지 독일 육군 및 해군에 몸담은 전직 중장이고 요아힘(Joachim Rühle) 독립이사는 1978년부터 2020년까지 독일 해군 및 국방부에 몸담은 전직 대장이다.
특히 요아힘 독립이사는 2020년부터 2024년까지 나토의 유럽 본부에서 참모총장을 지내기도 했다. 두 전직 장성의 공통점은 모두 공학을 전공했다는 것이다. TKMS 경영이사회와 감독이사회를 종합해 보면 대부분 기업인 출신들인데, 사외이사를 통해 군 관련 경험을 이식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나머지 2명의 독립이사 가운데 볼커(Volker Troche) 독립이사는 그룹의 최대주주인 알프리트 크루프 재단 출신이다. 하랄드(Harald von Heynitz) 독립이사는 KPMG 회계사 출신이다. 볼커 독립이사를 사실상 내부자로 본다면 TKMS 사외이사진 3명 가운데 2명(67%)이 전직 군인이 된다.
반면 한화오션 사외이사진에는 전직 군인이 없고 관료와 교수 출신이 대부분이다. 올해 1분기 말 기준 한화오션에는 총 5명의 사외이사가 몸담았는데 우선 김봉환 사외이사는 교수 출신이고 이효진 사외이사는 전직 검사와 교수를 거친 관료 출신이다. 이 밖에 최훈 사외이사는 금융위원회 및 싱가포르 대사 출신 관료, 김영삼 사외이사는 산업통상자원부 출신 관료이다.
다만 한화오션은 미국 공화당계 인물을 사외이사로 둠으로써 미국을 대상으로는 로비력을 강하게 가져가는 모습을 보인다. 조지 P.부시 사외이사는 조지 W.부시 전 미국 대통령의 조카이며 금융 전문 변호사다. 텍사스주 일반토지국장을 지내 공직 경험도 갖추고 있다.
실제로 한화오션은 이사회 밖의 창구로도 대관과 로비력을 미국에 집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한화오션은 국정원 출신들을 포함해 미국 대상 로비조직을 탄탄히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양사 사내이사진 역시 차이점이 보인다. TKMS 경영이사회는 CEO, CFO, COO, CHRO(최고인적자원책임자), CTO(최고기술책임자)의 총 5인의 C레벨로 구성된다. CFO를 제외하면 대부분 그룹사에서의 경력이 길지 않은 외부 출신들이다.
CEO인 올리버 부르카르트는 독일 연방통계청 출신으로 철강노동자조합인 IG메탈에 몸담다가 2013년부터 티센 크루프 그룹에서 근무했다. COO인 안드레아스 괴르겐 역시 연방 공무원 출신이며 CTO인 더크 스타인브링크는 소재기업인 넥산즈(Nexans)의 전직 CEO로 티센크루프 그룹으로 옮긴 시점은 2023년이다.
TKMS 사내이사의 또다른 특징은 감독이사회에 몸담는 사내이사들은 C레벨들과는 달리 대부분 티센크루프 그룹 내 경력이 길다는 점이다. 다수가 2000년대 초반부터 그룹에서 몸담았다. 즉 TKMS는 고문격의 내부자들을 감독이사회에 앉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반면 한화오션 사내이사진은 오너와 내부 출신 임원들이 중심이다. 우선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이 기타비상무이사로 자리하고 있다. 그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장남으로 그룹에서 방산 등 핵심 계열을 승계받았다.
그는 2010년 한화 비서실 차장으로 입사했다. 이후 한화솔라원 기획실장, 한화큐셀 전략마케팅실장, 한화솔라원 영업담당실장 등을 거쳐 2020년 1월 한화 전략부문장 겸 한화솔루션 전략부문장 부사장을 맡았다. 특히 한화오션의 전신인 대우조선해양의 인수전을 진두지휘하면서 그룹 해양사업의 발판을 마련한 장본인으로 평가받는다.
김희철 대표이사는 1988년부터 한화그룹에 몸담은 한화맨이다. 한화석유화학 경영기획팀장, 한화첨단소재 부품소재사업부장, 한화엘앤씨 앨라배마법인장 등을 거쳤다. 이 외에도 한화솔라원 중국법인 대표이사, 한화토탈 대표이사, 한화임팩트 대표이사, 한화에너지 단독 대표이사를 맡았다.
필립 레비 사장은 해외 해양 인프라 기업인 SMB오프쇼어 출신이다. 주로 해양 인프라 사업 매니징 디렉터를 맡았으며 2019년부터 미국 법인의 사장을 맡았다. 이후 스포츠AI 사업을 영위하는 스타트업인 페어비전을 공동설립했으나 2024년부터 한화오션 사내이사로 합류해 주로 해외사업을 총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