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배구조의 파워가 어디서 나오는지에 따라 이사회의 기능이 다른 것 같습니다. 최대주주와 회사 조직문화에 맞춰 이사회에 기대하는 역할과 책임도 달라집니다. 결국 지배구조 개선은 대주주와 조직의 의지가 뒷받침해야 합니다."
최근 만난 독립이사가 자신의 이사회 경험을 통해 느낀 지배구조 개선의 선결조건을 설명하며 한 말이다. 그는 재계의 내로라하는 정보기술(IT), 유통 서비스, 제조업체에서 독립이사로 재직한 경험이 있다. 서로 다른 업종에서 이사회 구조나 의사결정 등의 차이를 물어보자 회사의 지분구조와 문화, 그리고 대주주의 의지가 지배구조 개선 방향성을 결정짓는다는 '우문현답'식 설명이었다.
독립이사의 표현을 빌리자면 현재 재계 이사회는 성장통을 겪고 있다. 지난해 상법 개정으로 이사의 충실의무가 모든 주주로 확대되며 외부에선 이사의 투명성·독립성, 감시·견제 전문성 등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대주주와 회사에서 그 필요성을 깨닫지 못하고 이사회에 요구하지 않는다면 내부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회사의 경영환경과 대주주 상황에 따라 사업 아이디어를 제안하거나 오너 경영 리스크를 사전에 통제하는 등 특정 주주의 입맛에 맞춰 독립이사의 역할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
물론 이 역할이 불필요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과거 이사 충실의무
대상이 회사로 한정된 만큼 경영상 판단에 의한 결정이었다는 말로 이해를 구할 수도 있다. 이사회 결정이 실제 성과 창출로 이어져 사후적으로나마 주가 상승이나 배당 등의 형태로 일반 주주에게 환원하면 더할 나위 없는 선택이 된다.
하지만 이사회의 책임과 권한이 강조된 지금은 사후 성과를 통해서가 아니라 사전에 의사결정 배경을 충분히 설명·입증해야 하는 의무가 따라오게 됐다. 그 변화의 주체는 개별 이사가 아닌 회사와 대주주이며 현재 재계는 변화를 위한 성장통을 지나고 있다는 것이 이 독립이사의 견해였다.
반가운 대목은 재계 주요 그룹이 성장통을 피하지 않고 변화를 택했다는 점이다.
LG그룹이 올해 상장사에 독립이사 의장 체제를 구축하고
태광산업은 독립이사회와 선임독립이사제를 선제 도입했다. 내부적으로 거버넌스 개편을 고민하던 차에 개정상법 시행이 불러온 요구를 수용해 이사회 체질 개선이라는 결단을 내린 셈이다. 이사회 격변의 시기, 또 다른 결단의 사례가 나오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