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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보드 노트

좋은 게임보다 좋은 거버넌스

황선중 기자

2026-08-12 17:37:11

국내 대형 게임사들의 성장 과정은 대체로 비슷한 편이다. 어떻게든 좋은 게임을 만들어 사세를 키운 뒤 몸집에 걸맞게 거버넌스를 하나씩 보완해 나갔다. 좋은 게임으로 좋은 회사를 만든 구조였다. 많은 게임사가 좋은 게임을 발굴하기 위해 자본잠식까지 불사하며 모든 역량을 쏟는 배경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 공식은 예전만큼 잘 작동하지 않는다. 언제부터인가 신생 게임사가 시장을 뒤흔드는 게임을 배출하는 소식이 뜸해졌다. 하루에도 수천개의 게임들이 쏟아지고 있는 탓이다. 과거보다 더 많은 인력과 시간을 투입하며 실패 부담이 커졌는데 성공 가능성마저 희박해진 것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많은 게임사 도박에 가까운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막 탄생한 신생 회사여도 수백억원을 베팅하는 일이 빈번하다. 표면적인 이유는 성장 잠재력을 갖춘 게임사에 대한 선제 투자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좋은 게임 하나만 발굴하면 '잭팟'을 터뜨릴 수 있다는 믿음이 자리하고 있다. 결과는 대부분 좋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새로운 대주주를 맞은 카카오게임즈가 흥미로운 선택을 했다. 새롭게 이사회를 구성하면서 독립이사를 보강했다. 최종 의사결정권자인 이사회 의장 자리에는 독립이사를 앉혔다. 공동대표 체제까지 구축했다. 경영진이 독단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게 이중 삼중의 안전장치를 채운 것이다.

자칫하면 의사결정 속도가 늦어질 수 있지만 적어도 좋지 않은 의사결정을 한 번 더 걸러내는 역할은 할 수 있다. 카카오게임즈는 어느 게임에 얼마를 투자할지, 언제까지 기다릴지, 실패 가능성이 커졌을 때 어떻게 할 것인지 등 중대한 경영 갈림길마다 최대한 합리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있는 셈이다.

나아가 카카오게임즈는 좋은 게임이 좋은 회사를 만든다는 게임업계 오랜 공식까지 따르지 않고 있다. 좋은 거버넌스부터 갖춘 뒤 나쁜 게임을 최대한 걸러내겠다는 낯선 방식을 선택했다. 좋은 거버넌스로 좋은 회사를 만들겠다는 역발상 전략이다. 그간 국내 게임업계에서 그 어떤 곳도 시도한 적 없는 일이다.

국내 게임산업은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어느새 글로벌 진출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고 해외 게임사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콘솔게임 시장에서도 성과를 내고 있다. 북미·유럽의 유명 게임사를 자회사로 품는 사례도 잦아졌다. 이런 상황에서 이제는 글로벌 수준의 거버넌스를 갖춘 게임사까지 등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