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독립이사에게 2년째 구애 아닌 구애를 하고 있다. 인터뷰를 해달라는 요청이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거절당했다.
올해는 이유가 조금 달랐다. 자신은 "AI 시대에 적합한 사람이 아닌 것 같다"고 했다. 그 말이 마음에 오래 남았다. AI가 많은 것을 대신하는 시대, 오랜 경험의 값어치도 달라지는 걸까.
AI는 이미 사람이 평생 읽을 수 없는 양의 정보를 읽고 수많은 성공과 실패를 학습한다. 데이터의 양만 놓고 보면 사람이 AI를 따라갈 수 없다.
그렇지만 경험을 '학습'하는 것과 그 경험의 '당사자'가 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직접 결정을 내리고 결과를 기다리며 버틴 시간, 자신의 판단이 틀렸음을 신랄하게 받아들인 경험은 타인의 사례를 아는 것과 같지 않다.
이사회에서는 바로 그런 경험이 판단의 진짜 재료가 된다. 투자할지 멈출지, 경영진의 선택에 동의할지 제동을 걸지, 정답 없는 기로에 설 때가 많다. 과거의 경험이 다음 결정의 정답을 알려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비슷한 선택을 해보고 그 결과까지 몸으로 지켜본 사람만이 안다. 무엇을 더 확인해야 하는지, 어떤 위험을 의심해야 하는지.
AI 시대가 되었다고 해서, 먼저 그 자리에 앉아본 이들의 목소리를 덜 들을 이유는 없다. 무엇을 보고 판단했고 무엇을 놓쳤는지, 옳다고 믿었던 결정이 시간이 지나 어떻게 보이는지는 그들의 입에서만 나올 수 있는 이야기다.
얼마 전 마침내 그를 만났다. 끝내 인터뷰 승낙은 얻지 못했지만 긴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가 결국 요즘 사람들에게는 '잔소리'일 것이라며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그 겸손한 망설임을 보며 오히려 그의 이야기가 더 궁금해졌다.
마침 비슷한 시기에 만난 한 AI 전문가는 '사람의 눈을 마주하고 맥락을 읽는 일'은 AI로 대체되기 어렵다고 했다. 취재 현장에서 사람을 만나는 기자 역시 대표적인 직업으로 꼽았다.
독립이사들을 만나고 그들의 경험을 기록해 오면서 그 말의 의미가 한층 선명해졌다. AI는 수많은 텍스트를 요약할 수 있지만 "잔소리일 뿐"이라며 겸양하는 취재원의 눈빛 속에 담긴 묵직한 진심과 망설임까지 읽어내지는 못한다. 먼저 가본 사람의 말이 언제나 맞을 리도, 그대로 따를 필요도 없다. 하지만 직접 눈을 마주하며 들어볼 값어치는 충분하다.
내년에도 그에게 다시 인터뷰를 부탁할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