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을 잘하는 편은 아니다. 한때 게이밍 PC를 맞추고 어설프게 레이드를 따라다녔다. 닌텐도나 플스에서 기다리던 신작이 나오면 종종 사본다. 게임을 아주 모르지는 않으나 얼리액세스까지 챙겨본 게임은 손에 꼽는다.
얼리액세스의 우리말은 앞서 해보기. 개발 중인 게임을 먼저 공개해 이용자 반응을 살피고 오류도 잡는다. 완성품을 기다리지 않고 덜 다듬어진 게임에 먼저 뛰어드는 일이니 애정과 호기심 없이는 불가능하다.
여은정 중앙대 교수도 게임사의 신작이 나오면 얼리액세스 일정과 이용자 반응을 챙긴다. 독립이사로 오래 몸담은
크래프톤이다. 해외 게이머 커뮤니티의 평가까지 일독할 정도다.
본업은 게임과 거리가 멀다. 재무와 금융 분야의 전문가다. 이사회에서도 투자 규모와 위험을 따지는 역할에 주력하고 있다.
크래프톤은 콘텐츠와 신사업에 전문성을 갖춘 다른 이사들도 두고 있다.
그렇다고 게임과 콘텐츠를 다른 이의 영역으로 미뤄두지는 않았다고 했다. 요즘처럼 사업의 변화 속도가 빠른 때 게임사 독립이사는 꽤 바쁜 자리일 듯하다. AI는 하루가 다르게 상전벽해고 신작이 이어질 때마다 공부할 거리도 함께 늘어난다.
올해 그가 새로 맡은 자리도 눈길을 끈다. KCGI자산운용 독립이사다. 운용업 자체에 대한 관심이 제안을 수락한 이유였다. 연기금 경험은 있었지만 운용사 안에서 내부통제와 의사결정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직접 보고 싶었다고 했다.
이사의 전문성을 평가할 때 통상 가장 먼저 보는 것은 갖춰진 프로필이다. 회계사인지, 법률가인지. 필요한 조건이다. 다만 이사회에 들어간 뒤부터는 조금 다른 능력이 필요해 보인다. 회사가 낯선 사업을 시작했을 때 그 생경함에 머뭇거리지 않고 따라가려는 열의다.
2020년대의 독립이사에게 안주는 허락되지 않는 듯 하다. 게임사가 글로벌 광고회사를 인수하고 AI를 핵심 동력으로 삼는 시대다. 회사가 움직이는 만큼 이사에게 요구되는 공부의 범위도 넓어진다.
중용 코드를 취재해보니 기업들이 좋은 이사를 찾을 때 화려한 경력을 먼저 보는 경향은 뚜렷했다. 문제는 선임된 뒤다. 선임 이후에도 회사의 미래를 궁금해하며 앞서 공부할 사람인지 가려내기란 결코 쉽지 않다.
여 교수가
크래프톤에서 장수 독립이사로 신뢰받아온 비결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덜 다듬어진 신작을 먼저 경험하는 얼리액세스처럼 회사의 새로운 변화를 한발 앞서 파악하려는 부지런한 호기심이야말로 실질적인 이사회 견제와 거버넌스 구축을 가능하게 하는 진짜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