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금융사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시계가 다시 돌아가고 있다. 전 정부 시절 이자장사 비판에 시달렸던 은행권은 상생금융 대책을 마련하고 사회적 역할을 이행하는 데 분주했다. 최근엔 이자장사 논란이 한창이던 시절보다 개선된 실적을 내 기대치가 높아지고 있다. 또 민생에 방점을 찍은 새 정부가 들어서자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는 분위기다. 이젠 규모를 키우는 것 만큼이나 지속 가능한 지원책 마련이 관건이다. 금융사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한 상생금융 2.0 현황을 살펴봤다.
은행권이 이재명 정부 출범과 맞물려 상생금융에 힘을 쏟고 있다. 전 정부 시절 '이자장사' 비판에 호되게 시달렸던 은행권 입장에선 민생에 방점을 찍고 있는 새 정부 출범은 부담으로 작용한다. 주요 시중은행 사회공헌 금액이 이미 조단위를 넘어섰으나 이익 규모도 커진 만큼 발전된 상생 방안을 내놓아야 금융 당국 눈높이를 충족시킬 수 있다.
기존 상생금융안과 비교해 규모를 키우는 것 뿐만 아니라 사각지대에 실효성있는 지원을 제공하는 게 새로운 과제로 떠올랐다. 은행권은 상생금융을 전담하는 조직 정비와 함께 금융 소외계층을 살피고 있다.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별도의 상품과 플랫폼이 마련돼야 상생금융 지속 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다.
◇새 정부 출범 후 전운 감도는 은행권
은행권은 하반기 조직 개편과 경영전략회의에서 상생금융을 핵심 키워드로 내세웠다. 올 상반기 이재명 정부가 출범하면서 금융 당국의 새로운 방침에 따라 상생 방안을 업데이트 할 필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새 정부가 민생을 강조하고 있는 만큼 은행권에도 일정 부분 역할이 부여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재산상 이익 제공 금액 제외, 출처=은행연합회 사회공헌활동 보고서
은행권은 이미 상생금융 방안을 마련해 이행하고 있다. 상생금융이 본격화된 건 전 정부에서다. 윤석열 정부에선 은행권의 이자수익 추구가 과도하다는 점을 들며 비판 수위를 높였다. 은행권은 고금리 기조 장기화와 꺾이지 않는 대출 수요를 역대급 이자수익 배경으로 꼽았으나 비판 여론을 잠재우는 차원에서 사회적 역할을 확대할 필요가 있었다.
은행연합회 사회공헌활동 보고서에 따르면 주요 시중은행은 △서민금융 △지역사회·공익 △학술·교육 △메세나(문화·예술·체육) △환경 △글로벌 등 6개 분야에 걸쳐 상생금융 활동을 하고 있다. 여기에 지자체, 병원, 대학교, 공공기관 출연과 민생금융 지원을 추가해 상생금융 플랜을 수립하고 있다.
사회공헌활동 금액은 매년 상승하는 추세다. 2022년 4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의 상생금융 총액(재산상 이익 제공 제외)은 8306억원이었다. 이듬해 9765억원으로 증가했고 지난해에는 1조1280억원을 기록했다. 매년 역대 최대 순이익을 갱신하면서 이와 연동해 상생금융 금액을 확대한 것이다.
사별로 보면 지난해 신한은행이 3017억원으로 사회공헌활동 금액 규모가 가장 컸다. 지난해 시중은행 순이익 1위에 오르면서 리딩뱅크 위상에 걸맞은 수준으로 지원 금액을 늘린 것으로 풀이된다. 이어 KB국민은행 2993억원, 하나은행 2945억원, 우리은행 2325억원 순이었다.
주요 시중은행은 이재명 정부에 발맞춰 사회공헌활동 금액을 확대할 것으로 관측된다. 새 정부가 민생지원을 강조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은행권의 올 상반기 실적이 역대 최대치를 경신할 것으로 점쳐지고 있어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사별로 상생금융을 주도하는 조직 갖추고 이행 방안을 다변화하려는 움직임도 포착된다.
◇배드뱅크 출연으로 스타트…지속 가능한 '상품·플랫폼' 마련 과제
당장 배드뱅크 설립이 현안으로 부상했다. 이재명 정부 공약으로 추진되는 배드뱅크는 7년 이상 5000만원 이하의 장기 연체 채권을 일괄 소각하거나 조정할 예정이다. 다음달 배드뱅크 설립에 8000억원이 투입되는데 이중 절반을 금융권이 부담하기로 했다. 출연금 집행을 통해 상생금융을 이행하는 것이다.
당초 은행권만 배드뱅크 설립 재원을 부담하는 방안이 거론됐다. 하지만 장기 연체 채권이 대부분 2금융권에 몰려 있다는 점을 감안해 전 금융사가 참여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연체 비중이 낮은 시중은행의 주도적 역할을 바라고 있다는 점에서 대규모 이자이익을 올리고 있는 은행권에 대한 기대치가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회성 지원에 그치지 않으려면 상생금융 지속 가능성 확보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여건이 좋지 않은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의 재기를 돕되 은행권도 중장기적으로 핵심 고객층을 탄탄하게 다지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는 상품과 플랫폼 마련이 필요한 시점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가계대출 규제는 강화되는 추세이고 밸류업을 위한 자본비율 관리를 고려하면 기업대출을 늘리기도 녹록지 않다"며 "중소상공인을 포괄하는 소호(SOHO) 고객층이 대안으로 여겨지고 있는데 상생금융과도 맞닿은 부분이 있는 만큼 지속 가능한 모델을 만들어볼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