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법 개정 이후 사외이사의 자리는 분명 달라졌다. 주주충실의무가 명문화되면서 사외이사는 의사결정의 결과에 대해 법적·평판적 책임을 함께 져야 하는 위치로 올라섰다.
그동안 사외이사 자리가 상대적으로 편한 자리로 인식돼 온 것도 사실이다. 상법 개정 이전 만났던 한 사외이사는 '현업에서 뛰던 시절과 비교하면 사외이사로서의 이사회 활동은 부담이 크지 않고 편한 정도'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사외이사직은 전직 관료나 학계 인사에게 안정적 ‘세컨드 커리어’로 기능해 왔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이사회 결정이 주주이익을 침해했다고 판단될 경우 사외이사 역시 책임의
대상이 된다. 형식적 찬반 여부를 넘어 충분한 검토와 문제 제기를 했는지까지 따져 묻게 된다. 이사회 출석 자체가 아니라 그 안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가 중요해진 셈이다. 사외이사에게 요구되는 전문성과 시간 투입, 심리적 부담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졌다.
문제는 늘어난 책임과 비교해 보상도 충분히 따라오고 있냐는 점이다. 사외이사 후보군은 여전히 제한적이다. 학계와 관료 출신으로 풀이 고정돼 있다. 책임은 커졌지만 이를 감당할 수 있는 인재 풀이 자연스럽게 확대될 구조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사외이사의 책임을 강화하는 방향 자체를 되돌릴 수는 없다. 이는 기업 지배구조 개선과 주주 보호라는 큰 흐름 속에서 불가피한 선택이다. 다만 책임을 늘리는 만큼 합당한 보상과 지원 체계를 갖추는 논의도 병행돼야 한다.
주주충실의무를 명문화한 상법 개정은 이사회의 형식적 운영을 바꾸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지만 책임만 앞서고 이를 감당할 권한과 보상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제도의 지속 가능성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현대 경영학의 토대를 닦은 피터 드러커는 권한과 책임의 불균형을 경계하며 "책임없는 권한은 폭정, 권한없는 책임은 무력(Authority without responsibility is tyranny, and responsibility without authority is impotence)"이라고 말했다. 상법 개정 이후 사외이사 제도가 마주한 과제 역시 같다. 책임만 묻는 데서 멈출 것이 아니라 그 책임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 당근책도 설계되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