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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보드 노트

같은 거절, 다른 이유

안정문 기자

2026-07-20 10:06:33

최근 한 교수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회계와 기업지배구조 분야에서 오래 활동했고 여러 기업의 사외이사를 지낸 전문가였다. 답은 거절이었다. 국내외 감사·지배구조 관련 단체에서 활동하고 있어 외부 인터뷰나 기고를 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그런데 메일 끝 한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지금 맡은 역할이 끝나는 2년 뒤까지는 사외이사도 맡지 않을 생각이며 들어온 제안도 모두 고사했다는 내용이었다. 이해상충의 소지가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처음에는 그도 최근 분위기처럼 커진 책임을 부담스러워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이유는 책임이 아니라 독립성이었다. 그의 사외이사 자리는 법으로 금지된 것도, 규정에 걸리는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스스로 선을 긋고 있었다.

사외이사 취재를 하다 보면 후보를 구하기 어렵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상법 개정으로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가 확대되면서 책임 부담이 커졌고, 자리를 고사하는 사례도 늘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모두가 부담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최근 한 공기업은 자사 공익재단 이사장을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이 공기업은 이전부터 대주주 측 인물은 물론 회사 출신 인물까지 사외이사로 선임해 왔다.

독립성과 이해상충을 생각해 사외이사를 마다한 교수와 자체 공익재단 이사장을 선임한 기업. 같은 시장 안에서도 독립성을 바라보는 기준은 이렇게 다르다. 거버넌스 개선에 도움이 될 인물은 자리를 마다하고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큰 인물은 이사회에 합류한 셈이다.

이달 23일부터 상장회사의 사외이사는 독립이사로 이름이 바뀌고 의무 비율도 4분의 1에서 3분의 1로 높아진다. 제도를 통해 독립성의 하한선을 끌어올리려는 시도다. 다만 이름과 비율이 곧 독립성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기존 사외이사는 그대로 독립이사로 간주되고 대주주 측 인물로 채운 이사회도 이름표만 바꿔 단다. 비율 상향으로 독립이사 수요는 늘어나지만 후보난이 이어진다면 독립성에 대한 검증이 느슨해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결국 그런 사례를 줄이는 것은 법 조항이 아니라 독립성을 바라보는 시장의 기준이다. 법이 요구하지 않는 선까지 스스로 경계를 그은 교수같은 사람이 늘고 기업과 투자자 역시 그런 기준을 당연하게 받아들일 때 사외이사 풀의 하한선도 함께 높아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