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달 10일 대규모 상장회사의 집중투표제가 의무화된다. 표를 몰아줄 수 있게 되면서 이제 몇 표를 누구에게 주느냐가 당락을 가른다. 그런데 그 경기를 관장할 규칙은 아직 없다.
주주총회 운영 권한은 이사회 의장에게 있다. 이 재량은 곳곳에서 서로 다른 얼굴로 나타난다. 위임장 접수만 해도 어떤 총회는 신분증 없이도 받아주고 어떤 총회는 인감 도장의 모양까지 대조한다. 기준이 회사마다 다르다는 것보다 심각한 것은 그 검증이 한쪽으로만 향한다는 점이다. 주주가 모아 온 위임장은 의장이 들여다보지만 회사 측이 모아 온 위임장을 들여다볼 주체는 없다.
정보도 비대칭적이다. 경영진은 전자투표 진행 상황을 실시간으로 조회하고 외국인 주주의 의결권 행사 내역도 총회 전에 받아 본다. 일반주주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표를 던진다. 올해
고려아연 정기주주총회에서 이사회 추천 후보 두 명의 득표 차이는 90표였다. 사전 표결 현황을 알고 표를 배분한 쪽과 모르고 배분한 쪽의 격차가 어디까지 벌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 숫자다.
집중투표제의 취지는 소수주주가 이사회에 진입할 가능성을 높이는 데 있다. 그렇다면 후보를 선출하는 과정 역시 어느 한쪽에 유리하지 않아야 한다. 필요한 것은 대단한 입법이 아니다. 총회 전 동일한 시점에 동일한 범위의 사전 의결권 행사 정보를 공개하도록 하는 것, 위임장 심사 기준을 사전에 공지하고 양측에 같은 잣대를 적용하는 것부터다.
집중투표제가 실시된
KT&G와
JB금융지주,
고려아연에서도 외국인 주주의 과소표결 처리 방식이 제각각이었다. 명확한 기준이 없다 보니 회사의 사후 판단에 맡겨진 결과다. 이런 문제 제기가 주주 측에서 주로 나온다는 점도 문제다. 주주총회 절차의 공정성을 요구하는 일이 특정 주주의 경영권 분쟁으로만 받아들여져서는 안 된다.
제도를 만드는 것과 그 제도가 작동하게 하는 것은 다른 일이다. 집중투표 의무화는 일반주주에게 이사회로 가는 문을 열어줬지만 그 문 앞의 절차는 여전히 한쪽이 관리한다. 규칙 없이 시작된 경기의 승패를 놓고 제도의 실
효성을 논하기는 이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