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지주에서 은행은 그룹의 실적과 자산에서 가장 큰 몫을 차지하는 핵심 계열사다. 은행을 이끄는 은행장 역시 개별 자회사 최고경영자(CEO)를 넘어 그룹 경영의 한 축을 담당한다. 회장과 함께 그룹 경영 전반에 관여하는 핵심 경영진으로 꼽히는 이유다.
이 같은 위상과 별개로 지주 이사회에서 은행장에게 주어진 자리는 제한적이다. 4대 금융지주 가운데 현직 은행장을 이사로 둔 곳은
KB금융과 신한금융 등 절반에 그친다. 두 곳 모두 은행장이 기타비상무이사로 지주 이사회에 참여하지만 역할의 범위는 또 다르다. 하나금융과 우리금융은 아예 현직 은행장을 이사회에 두지 않고 있다.
◇KB·신한, 은행장 위한 기타비상무이사 한 자리
theBoard는 2025년 12월 31일 기준 재임 중인 이사를 기준으로
KB금융·신한금융·하나금융·우리금융 등 4대 금융지주의 이사회를 조사했다. 지주회사 이사회만
대상으로 하며 은행·증권·카드 등 자회사 이사회는 포함하지 않았다.
KB금융 이사 9명 가운데 한 자리는 이환주
KB국민은행장 몫이다. 그는 2025년 초 국민은행장으로 취임한 뒤 지주 이사회에 참여하고 있다. 신한금융 역시 정상혁
신한은행장이 지주 기타비상무이사를 맡고 있다.
KB금융에서 은행장이 지주 이사회에 참여하는 구조는 2017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윤종규 회장이 겸임하던
KB국민은행장 자리를 허인 행장에게 넘기면서 3년 만에 지주 회장과 은행장을 다시 분리했다. 2014년 'KB사태' 이후 윤 회장이 두 자리를 겸해왔지만 지주와 은행의 현안이 늘어나면서 각자의 경영에 집중할 필요성이 커진 데 따른 결정이었다.
회장과 은행장 자리는 분리했지만 은행장과 지주 이사회의 연결은 유지했다. 허인 행장이 지주 이사회에 참여했고, 이후 이재근 전 행장을 거쳐 이환주 행장까지 현직 국민은행장이 지주 이사로 참여하는 구조가 이어지고 있다.
신한금융도 은행장이 지주 이사회에 참여하는 구조를 이어왔다. 진옥동 현 회장은
신한은행장 시절 지주 기타비상무이사로 이사회에 참여했고, 정상혁 행장이 은행장에 오른 뒤에도 현직 은행장이 지주 이사를 겸하는 틀을 유지했다.
두 사람이 이사회 내에서 맡은 역할은 다르다. 이환주 행장은
KB금융 계열사대표이사후보추천위원회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계열사 대표이사의 경영승계 계획을 수립하는 위원회로, 사실상 인사권을 쥐고 있는 곳이다. 이 행장이 은행장 신분으로 그룹 계열사 CEO의 거취를 다루는 논의에 참여하는 셈이다.
신한금융은 다르다. 정상혁 행장이 참여하는 이사회 내 위원회는 ESG전략위원회 한 곳이다. 자회사 CEO 인선을 다루는 자회사최고경영자후보추천위원회에는 이름을 올리지 않고 있다.
◇은행 의존도 높은 하나·우리, 현직 행장은 이사회 밖
은행장의 지주 이사회 참여 여부는 그룹의 은행 의존도와 꼭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2025년 실적을 놓고 보면 반대에 가깝다. 그룹 전체 순이익에서 은행이 차지하는 비중은
KB금융이 66.1%로 4곳 가운데 가장 낮다. 신한금융도 75.9%로 우리금융(83.0%)과 하나금융(93.6%)을 밑돈다. 비은행 계열사의 이익 기여도가 상대적으로 큰 KB·신한이 현직 은행장을 지주 이사로 두고 있다.
하나금융과 우리금융도 과거에는 현직 은행장이 지주 이사회에 참여했다. 변화는 은행장 교체 과정에서 나타났다. 두 곳 모두 새 은행장이 취임했지만 이사회 자리는 넘겨받지 못했다.
하나금융에서는 이승열 부회장의 거취를 전후로 구조가 달라졌다. 이 부회장은
하나은행장 재임 중이던 2024년 지주 사내이사로 선임됐다. 강성묵
하나증권 대표이사 사장도 함께 사내이사에 합류했다. 은행장 한 명을 기타비상무이사로 두는 데서 나아가 주요 계열사 CEO를 지주 사내이사로 두는 체제로 확대한 것이다. 하나금융은 당시 이사회의 책임경영과 내부통제 강화를 배경으로 제시했다.
2025년 초 이승열 부회장이 이호성 행장에게
하나은행장 자리를 넘기면서 구도가 달라졌다. 이 부회장은 하나금융 부회장으로 이동한 뒤에도 사내이사직을 유지했지만 이호성 행장은 지주 이사로 새로 선임되지 않았다.
우리금융은 은행장과 지주 이사회의 연결이 더 일찍 끊겼다. 은행장이 항상 지주 이사를 겸했던 것도 아니다. 권광석 전
우리은행장은 지주 이사회에 참여하지 않았고, 2022년 이원덕 행장이 취임하면서 기타비상무이사로 합류했다. 이원덕 전 행장이 2023년 물러난 뒤에는 후임 은행장이 지주 이사로 선임되지 않았다.
지주는 그룹 전략에 집중하고 은행을 비롯한 자회사는 영업에 집중하기 위한 취지다. 이 같은 기조는 2025년 정진완 행장이 취임한 뒤에도 이어졌다. 정 행장 역시 지주 이사회에는 참여하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