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더보드 인터뷰

전병조 하나증권 독립이사 "CEO 때는 몰랐던 질문의 힘"

CEO·독립이사 양쪽 경험…"견제하되 경영 대신해선 안돼"

조은아 기자

2026-09-03 11:06:44

같은 질문도 어느 자리에 앉아 듣느냐에 따라 무게가 달라진다. 최고경영자(CEO)에게 독립이사의 질문은 때로 의사결정의 속도를 늦추는 부담이었다. 직접 독립이사가 되고 나서는 생각이 달라졌다. 회사 안에서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전제를 다시 묻는 질문이 경영진이 놓친 위험을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경제관료와 금융회사 CEO를 거쳐 독립이사로 자리를 옮긴 전병조 하나증권·BC카드 독립이사(사진)가 독립이사의 역할을 '다른 시각에서 질문하는 것'으로 정의하는 이유다. 경영진보다 더 많은 정보를 가지려고 하기보다 다른 위치에서 같은 사안을 바라보고 내부의 익숙한 논리를 다시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경영진을 견제하되 직접 경영을 대신해서도 안 된다고 봤다. 일상적인 영업과 집행은 경영진의 영역으로 남겨두고 대규모 자본투입이나 신사업 진출처럼 실패했을 때 되돌리기 어려운 의사결정을 이사회가 집중적으로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금융회사에서는 단기적인 수익보다 손실이 현실화됐을 때 회사가 이를 감당할 수 있는지도 중요한 판단 기준으로 꼽았다.

◇"당연한 전제 다시 물어야"…경영진과 다른 위치서 질문

전 이사는 기획재정부 국장을 거쳐 금융투자업계로 자리를 옮겼다. KB투자증권 대표이사를 지냈으며 현대증권과 KB투자증권의 통합 이후 KB증권 대표이사를 맡았다. 현재 하나증권과 BC카드 독립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전 이사는 관료와 CEO 경험이 현재 독립이사로서 경영진의 의사결정을 바라보는 데 서로 다른 시각을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관료 경험을 통해 개별 금융회사의 손익을 넘어 금융시장과 경제 전체를 바라보게 됐다면 CEO 경험을 통해서는 실제 경영이 불완전한 정보와 제한된 시간 속에서 이뤄진다는 점을 체감했다.

그는 독립이사로서 결과를 사후적으로 평가하기보다 당시 충분한 정보와 검토를 바탕으로 합리적인 판단을 했는지를 중요하게 본다고 설명했다.

CEO와 독립이사 양쪽에 서본 경험은 독립이사의 역할에 대한 생각도 바꿨다. CEO 시절에는 독립이사의 질문이 경영 현장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데서 나온다고 느끼기도 했지만, 독립이사가 된 뒤에는 경영진이 회사 내부 논리에 익숙해질수록 외부 시각이 필요하다는 점을 알게 됐다고 했다.

전 이사는 "독립이사의 중요한 역할은 경영진보다 더 많은 정보를 갖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경영진과 다른 위치에서 같은 사안을 바라보고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전제를 다시 질문하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사회의 위상도 경영진의 결정을 승인하는 역할에서 주요 경영 의사결정에 실질적으로 참여하는 쪽으로 이동했다고 평가했다. 특히 리스크관리와 내부통제, 소비자보호, 자본배분 등의 영역에서는 독립이사의 질문과 의견이 의사결정 과정에 직접 반영되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봤다.

다만 이사회의 영향력이 커진다고 해서 독립이사의 개입 범위가 무한정 넓어져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전 이사는 "이사회의 영향력이 커진 만큼 중요한 것은 발언의 횟수가 아니라 충분한 정보와 전문성에 기초해 꼭 필요한 문제를 정확히 제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CEO 시절에는 독립이사의 추가 설명과 검토 요구가 부담으로 다가올 때도 있었다. 그럼에도 좋은 질문은 경영진이 놓친 가정을 확인하고 의사결정 논리를 단단하게 만드는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반대로 이사회가 경영의 세부사항까지 직접 결정하면 책임 경계가 불분명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전 이사는 "독립이사의 견제는 경영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위험과 전제를 점검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좋을 때 위험 안 보여"…금융사는 손실 감당력 먼저

금융회사 이사회에서는 이 같은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고 봤다. 금융회사는 자기자본뿐 아니라 고객의 자금과 신뢰를 기반으로 운영되고 금융시스템과도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독립이사가 수익성만 볼 것이 아니라 건전성과 유동성, 소비자보호, 내부통제, 평판위험 등을 함께 살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호황기에 위험을 과소평가하는 것을 경계했다. 전 이사는 "좋은 시기에는 위험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을 경계해야 한다"며 "단기적인 이익이 커 보이더라도 손실이 현실화됐을 때 회사가 감당할 수 있는지를 묻는 것이 금융회사 독립이사의 가장 중요한 역할 가운데 하나"라고 말했다.

전 이사는 현재 하나증권과 BC카드에서 모두 리스크관리위원장을 맡고 있다. 증권사와 카드사는 사업구조가 다른 만큼 이사회가 살피는 위험의 성격에도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증권사는 시장가격과 금리, 신용, 유동성 변화가 상대적으로 빠르게 손익과 자본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시장과 포지션의 변화를 지속적으로 살펴야 한다. 카드사는 신용위험과 조달비용에 더해 연체율과 소비경기, 고객정보, 결제시스템 안정성이 중요하다고 봤다.

하나증권과 BC카드 이사회가 공통적으로 다루는 사안은 건전성과 내부통제, 소비자보호, 디지털 전환, 정보보안, 미래 성장동력 등이다. 다만 하나증권은 자본시장 상황과 투자자산 가치 변동, 시장·신용·유동성 위험과 자본활용의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크고 BC카드는 가계신용과 조달비용, 연체율, 결제 인프라와 데이터 기반 사업에 더 무게가 실린다.

전 이사는 "업종별 위험의 형태는 달라도 지속가능한 수익성과 위험의 균형이라는 이사회의 기본 과제는 같다"고 말했다. 리스크를 판단할 때는 "예상수익보다 손실이 발생했을 때의 규모와 회복 가능성, 그리고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회사가 버틸 수 있는지를 먼저 본다"고 설명했다.

◇"경영 판단 재량도 존중"…책임 강화와 균형 필요

이사회가 깊게 관여해야 할 의사결정의 기준은 리스크의 크기와 되돌릴 수 있는지 여부에서 찾았다. 일상적인 영업과 집행은 경영진에 맡기되 대규모 자본투입과 신사업 진출, 인수합병(M&A), 유동성과 자본건전성에 영향을 미치는 결정은 이사회가 면밀하게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소비자나 회사의 평판에 장기간 영향을 미치는 사안도 같은 범주로 봤다. 전 이사는 "특히 실패했을 때 되돌리기 어렵거나 손실의 상한을 판단하기 어려운 의사결정일수록 독립이사의 검토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사회와 독립이사의 책임을 강화하는 최근 흐름에는 경영 판단의 재량도 함께 존중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기업경영에서 모든 위험을 제거할 수 없고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면 성장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책임만 강화할 경우 경영진과 이사 모두 위험을 회피하는 방향으로 움직일 가능성도 있다고 봤다.

전 이사는 "중요한 것은 결과가 좋았는지를 사후적으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충분한 정보와 검토를 거쳐 합리적으로 결정했는지를 보는 것"이라며 "책임 강화와 함께 경영 판단의 재량도 존중되는 균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CEO 시절 자신이 원했던 독립이사상도 지금은 달라졌다. 당시에는 회사와 경영을 잘 이해하고 필요한 순간에 조언해주는 독립이사를 원했다면 지금은 경영진과 신뢰관계를 유지하면서도 필요한 순간에는 불편한 질문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전 이사는 "좋은 독립이사는 경영진과 대립하는 사람도, 경영진의 결정을 단순히 지지하는 사람도 아니다"라며 "경영진이 더 좋은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다른 시각을 제공하고 중요한 위험을 미리 발견하게 만드는 존재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