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국민카드 이사회의 회의 시간이 길어졌다. 독립이사들이 전보다 적극적으로 질문하고 각자의 전문 분야에서 안건을 점검하고 있다. 의견이 첨예하게 맞선 결과는 아니다. 지난 3월 황인선 독립이사
(사진)가 의장을 맡은 뒤 질문과 토론이 늘었고 경영진의 사전 보고와 안건 준비도 한층 촘촘해졌다.
황 의장은 독립이사 의장 체제를 견제 강화로만 설명하지 않았다. 기존의 신속성과 효율성을 유지하면서 이사회의 독립성과 중장기적인 시각을 더해야 한다고 봤다.
황 의장은 1965년생으로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듀크대에서 경제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은행 통화정책국·금융시장국 팀장과 커뮤니케이션국장, 기획재정부 민생경제정책관, 국제금융센터 부원장 등을 지냈고 지난해 국민카드 독립이사로 합류했다.
◇"다양한 질문, 판단의 완성도 높인다"
황 의장은 더벨과의 인터뷰에서 독립이사로 선임될 당시 주변에서 들었던 조언부터 꺼냈다. 회사에 부담을 주지 않으려면 말을 줄이고 조용히 있으면 된다는 얘기였다. 그러나 직접 몸담으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그는 "회사의 중요한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만큼 안건마다 세심하게 살펴봐야 했다"며 "회사가 중장기적으로 성장하고 발전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저절로 생겼다"고 말했다.
황 의장은 국민카드의 첫 독립이사 의장으로, 전체 논의를 이끌고 서로 다른 의견을 조정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그는 대표이사 의장 체제에는 의사결정과 집행을 빠르게 연결하는 장점이 있다고 봤다. 올해 이사회에서 독립이사가 의장을 맡도록 규정을 정비할 때도 이 방향에 공감하면서 그 장점이 훼손되지 않아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그는 "독립이사 의장 체제는 경영의 효율성 못지않게 감시와 견제, 중장기적인 기업가치 제고에 방점을 둔다"며 "하나를 포기하는 게 아니라 효율성 쪽으로 기울어 있던 균형을 맞춰가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독립이사들이 이사회를 바라보는 위치도 달라질 수 있다고 봤다. 회사 밖에서 회의에 참석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사회를 함께 이끄는 주체라는 인식이 커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황 의장은 "독립이사들이 조금 더 주도적으로 운영한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며 "소속감과 책임감이 커지는 것도 지배구조 개선의 순기능이 아닐까 싶다"고 했다.
당초 두 시간가량으로 예정했던 회의가 한두 시간 길어지는 일이 적지 않다. 황 의장은 "문제가 있는지를 더 꼼꼼하게 확인하고 각자의 경험과 전문성을 토대로 다른 시각에서 질문하면서 시간이 길어졌다"고 말했다.
국민카드 독립이사진은 거시경제와 금융시장, 회계·재무, 법률·규제와 정보보호, 소비자보호 분야의 전문가로 구성돼 있다. 황 의장은 이를 '환상의 조합'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충분한 정보가 좋은 질문을 만들고, 좋은 질문이 더 나은 의사결정으로 이어진다"며 "다양한 질문과 토론은 의사결정을 지연시키는 것이 아니라 판단의 완성도를 높인다"고 말했다.
의결 이후의 사후관리에도 무게를 뒀다. 중요한 안건은 승인 당시의 전제조건이 유지되는지, 이사회 의견이 반영되는지, 기대했던 효과가 나타나는지를 다시 확인해야 한다고 봤다. 국민카드는 주요 안건의 추진 상황을 분기 또는 반기 단위로 재보고하도록 하고 있다.
앞서 이사회에서는 금융소비자보호 내부통제위원회 결과를 검토하며 소비자보호에 대한 사회적 기대가 높아지는 만큼 다소 비용이 들더라도 기존 개선에 만족하지 말고 미비점을 계속 보완해야 한다는 의견을 모았다. 기업정보조회업 진출을 위한 정관 변경 때에는 시장 규모가 크지 않더라도 기존 개인신용정보업과의 연계, 법인고객의 수요, 데이터 거래와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을 감안하면 추진할 실익이 있다는 결론을 냈다.
황 의장은 "효율성은 일을 올바르게 하는 것이고 효과성은 올바른 일을 하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며 "의장은 회의를 효율적으로 진행하는 데 그치지 않고 회사와 고객을 위해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충분한 정보와 토론을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사회는 회사가 내일도 흔들리지 않을지 살펴야"
황 의장의 판단에는 30년 넘게 한국은행에서 실물경제와 금융시장을 분석한 경험이 깔려 있다. 기획재정부 민생경제정책관으로 근무한 2년 동안에는 물가를 비롯한 서민경제 정책을 수립·집행했고, 국제금융센터에서는 세계경제와 국제금융시장에 대한 경험을 쌓았다.
그는 통화정책과 소비, 가계부채, 시장금리, 금융회사의 수익성과 건전성을 별개의 현상으로 보지 않는다. 기준금리가 오르면 시장금리가 따라 오르고 소비가 위축돼 카드 이용이 줄어든다. 동시에 카드사의 조달비용과 고객의 상환 부담이 커지면서 수익성과 건전성이 함께 나빠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 때문에 안건을 검토할 때도 단기 손익을 넘어 경제정책과 금융시장 환경이 달라져도 사업이 지속될 수 있는지를 살핀다.
황 의장은 올해 첫 이사회에서 지난해 경영성과를 검토하며 소비 부진 속에서도 자산건전성을 강화하고 개인 신용판매 일반매출에서 시장 수준을 웃돈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다만 기준금리와 시장금리, 대출규제 방향, 가계소비 여건을 고려하면 올해도 경영환경이 녹록지 않을 것으로 보고 건전성에 기반을 둔 성장 기조를 이어가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그는 "경영진이 오늘의 성과를 만들어간다면 이사회는 회사가 내일도 흔들림 없이 걸어갈 수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며 "단기적인 성장뿐 아니라 중장기적인 기업가치의 유지와 제고, 즉 지속가능성에 더 큰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짚었다.
경영진과 의견이 다를 때도 결론부터 반대하지 않는다. 경영진이 어떤 목표와 제약조건 아래에서 판단했는지를 듣고 그 논리가 성립하는 데 필요한 가정과 위험요인을 확인한다. 현장을 매일 운영하지 않는 독립이사가 사정을 충분히 듣지 않고 원칙만 주장하면 실
효성 있는 견제가 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반대로 경영진의 설명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독립적인 역할을 다했다고 보기 어렵다고도 했다.
황 의장은 "중장기적으로 회사에 도움이 되는지, 계획이 예상대로 진행되지 않을 때 플랜B가 준비돼 있는지, 소비자와 감독당국은 어떻게 받아들일지를 질문한다"며 "개인적인 찬반보다 회사가 관리해야 할 위험과 대안을 중심으로 논의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견제의 성격은 자동차에 빗댔다. 이사회의 견제는 자동차를 멈추게 하는 제동장치라기보다 앞으로 마주할 수 있는 위험을 미리 비추는 전조등에 가깝다는 설명이다.
앞으로 카드사 이사회가 집중해야 할 과제도 지속가능성을 기준으로 정리했다. 먼저 수익성과 건전성의 균형이다. 위험을 충분히 반영하지 않은 성장은 결국 대손비용과 자본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다. 디지털 전환과 인공지능 활용 과정에서는 생산성과 고객 편의뿐 아니라 개인정보보호와 정보보안 위험을 함께 관리해야 한다. 금융소비자보호와 내부통제 역시 규정과 조직을 갖추는 데서 그치지 않고 상품의 설계와 판매 단계부터 작동해야 한다고 봤다.
황 의장은 이전부터 이사회에서 정보보호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그는 "정보보호 사고는 금융회사의 신뢰에 큰 상처를 줄 수 있다"며 "열심히 해도 100% 막을 수 없다는 생각으로 접근해서는 안 되고 어떤 경우에도 보안과 안전을 지켜내야 한다는 자세로 체계를 구축하고 운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좋은 이사회의 조건으로는 전문성과 다양성을 갖춘 구성, 충분한 정보, 자유로운 토론을 꼽았다. 국민카드 이사회에 대해서는 "아직 부족한 점이 있지만 상당히 괜찮은 지점에 와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제도는 문서에서 시작되지만 진정한 가치는 실제 운영 과정에서 완성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