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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보드 인터뷰

전직 삼성 준법위 변호사, 원익에서 그리는 준법경영

이호석 원익홀딩스 CLO, 사내 주주가치위원회 설치해 이사회 컴플라이언스 이슈 사전대응

이돈섭 기자

2026-10-20 08:24:38

"컴플라이언스는 하나의 정신과 같습니다. 타의에 의해서 구축하게 되면 컴플라이언스는 껍데기에 불과합니다. 준법문화를 현실화했을 때 진짜 컴플라이언스가 되는 것입니다."

이호석 원익홀딩스 전무(CLO·최고법률책임자,사진)는 최근 theBoard와의 인터뷰에서 기업의 준법경영이 단순히 법률 위반을 방지하기 위한 규정이나 통제 절차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경영진부터 일선 임직원까지 의사결정 과정에서 준법을 당연한 원칙으로 받아들이는 조직문화가 중요하다는 얘기다. 이 전무의 철학은 삼성그룹에서 원익그룹으로 이어지는 그의 준법통제 체계 구축 작업에 그대로 녹아 있다.

이 전무는 국내 손꼽히는 컴플라이언스 전문가로 잘 알려져 있다. 고려대 법학과와 미국 시카고대 로스쿨(석사)를 졸업한 이 전무는 미국 변호사로 삼성그룹에서 10년 이상 준법경영 업무를 담당했고 2020년 출범한 삼성그룹 준법감시위원회의 기획과 구성, 운영에 두루 참여했다. 2023년 12월 원익홀딩스로 자리를 옮긴 그는 현재 CLO로 그룹 상장 계열사 중심으로 준법통제 체계를 정비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 법무 조직에 묻혀 있던 준법 기능, 독립성 강화

원익그룹은 2024년 5월 공시대상 기업집단으로 지정됐다. 준법경영 전담 임원 자리를 신설해 이 전무를 영입한 건 직전 연도 말이었다. 이 전무는 삼성그룹 준감위 출범을 주도한 주요 인물 중 한 명으로 미래전략실에서 준법경영 업무를 수행했고 비금융 계열사 준법조직을 정비하는 한편 해외 법인 통제 체제를 확대하는 데 기여했다. 회사 측은 그룹 전반에 보다 강력한 준법통제 체제를 구축하길 원했다는 후문이다.

삼성그룹의 준감위는 컴플라이언스 구축 차원에서 완벽에 가까운 제도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전무 10년 넘게 삼성그룹에서 축적한 컴플라이언스 업무 경험을 다른 기업에서도 활용해보고 싶었다. 이 전무는 "삼성그룹에서 발로 뛰면서 준법통제 체계를 성공적으로 구축해 운영해 온 경험을 아직 컴플라이언스 체계가 충분하게 갖춰지지 않은 다른 기업에서 적용해 보는 것도 의미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2023년 말 원익그룹 합류 후 그는 준법 업무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높이는 데 주력했다. 그룹 내 상장 계열사 중심으로 법무 조직 내 전담자를 지정하고 컴플라이언스 업무를 별도의 기능으로 구분했다. 이 전무는 그룹 컴플라이언스 업무를 총괄하고 있다. "글로벌 기준에 부합하는 준법통제 체계를 갖추기 위해 법무조직 내 컴플라이언스 기능을 끄집어 내 독립적으로 구축하는 작업"이었다는 게 이 전무의 설명이다.
[사진=이호석 전무 제공]

지난해 상법 개정에 대응해 그룹 의사결정 절차 체계화 작업에도 공을 들였다. 이사 충실의무 대상이 전체 주주로 확대되면서 이사회가 주주 이익에 미치는 영향을 체계적으로 검토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사회 안건 기안 부서가 유상증자나 대규모 투자 등과 같은 주주 간 이해상충 가능성이 있는 안건에 대해 주주영향보고서를 작성하면 사내 임원진으로 구성된 주주가치위원회가 검토해 이사회에 상정하게 했다.

정책 당국이 이사회 산하에 특별위원회를 만들어 안건을 심의케 한 것과 달리 원익홀딩스 모델은 이사회에 해당 안건을 올리기 전 검토한다는 점에서 차이점이 있다. 이사회에 제기될 수 있는 잠재적 법률 이슈를 사전에 차단하고 이사회 차원의 준법경영 의지를 기업 의사결정 절차 내에 구현했다는 점에서 시장의 호평을 받았다. 일부 로펌의 경우 기업 자문 과정에서 원익그룹을 모범 사례로 소개하기도 했다.

◇준법경영 실효성 강조…임원 평가·보상에도 반영해야

이 전무가 강조하는 컴플라이언스의 핵심은 실효성이다. 조직과 규정을 갖췄다는 사실보다 실제 법률 위반을 예방할 수 있는 체계가 작동하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 전무는 기업의 준법경영 수준을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으로 '리스크 평가'를 꼽았다. 사업 영역과 진출 국가, 기업 규모에 따라 발생 가능한 법률 위험이 서로 다른 만큼 각 회사에 맞는 위험을 식별하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 전무는 "리스크 평가가 안 돼 있으면 아무리 거창한 조직을 만들어 놔도 소용이 없다"면서 "평가된 위험을 상시적이고 정기적으로 점검하고 있는지도 확인해야 할 사항"이라고 강조했다. 건설과 전자, 화학 등 각 업종별로 노출되는 법정 위험이 다른 데다 진출 국가에 따라서도 규제 환경이 다를 수밖에 없다. 위험을 파악한 뒤에는 그에 대응하는 정책을 수립하고 교육과 점검으로 연결하는 시도가 중요하다.

준법 조직의 독립성도 중요한 요건이다. 수익성 확보를 우선하는 사업 조직의 영향 아래에서는 준법 담당자가 경영진에 반대 의견을 제시하기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장기적으로는 이사회가 준법조직을 직접 감독하는 체계로 발전하는 방안도 고려해봄직 하다. 원익홀딩스의 경우 준법 관련 조직은 대표이사 직속으로 운영되고 있지만 이 전무는 전문성을 바탕으로 업무상 판단의 독립성을 보장받고 있다고 했다.

장기적으로는 임원 평가와 보상에도 준법경영 성과를 반영하는 방식도 고민해 봄직하다. 이 전무는 "임원 평가에 컴플라이언스 요소가 들어가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이 단계는 리스크 평가와 정책 수립, 교육 및 점검 등을 거쳐 평가와 보상, 제재까지 연계되는 최종 단계"라면서 "국내 기업들의 경우 최근 몇년 간 수준이 많이 올라왔지만 글로벌 수준에 비교해봤을 때 아직 개선할 점이 적지 않은 것은 사실"이라고 꼬집었다.

그래서 우리나라 시장엔 아직 해야 할 일이 많다. 상당수 기업들이 준법조직 독립성을 강화하고 의사결정 과정을 체계화하는 등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지만 임원 평가와 보상 연계, 이사회 감독체계 등은 앞으로 구축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이 전무는 "(컴플라이언스 체계가)형식적으로 갖춰 있으면 법 위반을 막을 수 없다"면서 "준법 문화를 현실화했을 때 진짜 체계가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