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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폐규제기업 거버넌스 점검

이사회는 재건보다 자금조달에 매달렸다

[총론]407곳 3년 안건 2.9만건 분석 결과 자금조달 30%, 사업·재무 개선은 1% 미만

안정문 기자

2026-10-20 16:20:16

편집자주

금융당국은 올해 초 증시 체질 개선을 위해 '부실기업 신속·엄정 퇴출을 위한 상장폐지 개혁 방안'을 내놨다. 주가 1000원 미만 동전주와 시가총액이 기준에 미달한 기업들이 퇴출 대상으로 지목됐다. 10월 들어 법원이 관련 규제에 제동을 걸었지만 해당 기업의 체질 개선에 대한 주주들의 볼멘 소리는 커졌다. 기업들의 경영에 대한 책임은 최대주주와 경영진에게 우선 물을 수 있다. 그러나 상법상 경영진의 업무집행을 감독하는 이사회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theBoard는 위기 신호가 확인된 상장사의 사업보고서를 분석해 상폐 규제에 직면한 기업들의 이사회가 무엇을 논의했고 무엇을 놓쳤는지 살펴본다.
상장폐지 위기에 몰린 상장사 이사회는 위기 직전 3년간 사업을 되살리기보다 자금을 조달하는 데 집중했다. 2023년 이후 상장폐지·관리종목 지정 등 위기 신호가 나온 상장사 407곳의 이사회 활동내역을 분석한 결과 위기 직전 3개 사업연도 안건 2만9275건 가운데 30%(8878건)가 전환사채(CB) 발행과 유상증자, 차입 등 자금조달이었다.

계열사·특수관계자 등과의 자금 거래·담보 제공 안건도 14%(4014건)를 차지했다. 반면 사업계획·신사업·구조조정 등 사업·재무 개선 안건은 163건에 그쳤다. 전체 안건 100건 중 1건 수준에 미치지 못했다. 자금을 끌어오거나 관계사와 자금을 주고받는 안건이 이사회의 주요 의사결정으로 자리 잡은 셈이다.

이사회 내부의 견제 흔적은 드물었다. 이사가 반대하거나 기권한 안건은 294건으로 전체의 1% 수준이었다. 분석 대상 407곳 가운데 350곳(86%)은 3년간 반대·기권이 한 건도 없었다. 상장폐지된 기업과 위기 사유를 해소해 상장을 유지한 기업은 이사회 개최 횟수와 출석률, 자금조달 안건 비중에서 차이를 보였다. 그러나 반대·기권이 없다는 점은 두 그룹이 다르지 않았다.

◇안건 2.9만건 중 자금조달 최다

theBoard는 2023년 1월부터 올해 10월까지 금융감독원, 한국거래소 공시자료에서 상장폐지, 상장폐지 절차 진행, 관리·환기종목 지정, 우려 공시, 사유 해소 등의 이력이 있는 기업 이 가운데 이사회 활동내역을 공개한 407곳의 위기 직전 3개 사업연도 사업보고서 1211건을 분석했다. 해당 기간 이사회 개최 횟수는 2만1393회다.

안건 유형별로는 자금조달이 30%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결산 승인·주주총회 소집 등 정례·결산·보고 안건(24%)보다 많았다. 투자·인수합병(M&A)·자산거래가 15%, 대여·담보·특수관계 거래가 14%였으며 인사·보상·지배구조 안건은 9%였다. 상장폐지된 기업 91곳만 보면 전체 안건 9093건 가운데 35%가 자금조달이었다. 정례적으로 처리하는 안건보다 자금조달 안건의 비중이 더 컸다.

조달뿐 아니라 자금의 이동과 관련된 의사결정도 적지 않았다. 국보 이사회는 2022년 120회 열려 125건의 안건을 처리했다. 이 가운데 60건이 대여·담보·특수관계 거래였고 53건은 종속·계열사와의 자금거래였다. 같은 해 자금조달 안건은 27건이었다. 해당 연도 안건의 70% 가까이가 자금조달이나 계열사와의 자금거래에 집중됐다.

사업을 개선하거나 재무구조를 바꾸기 위한 논의는 상대적으로 드물었다. 사업계획·신사업·비용 절감·사업부 정리 등 사업·재무 개선 안건은 163건이었다. 감자·회생·청산 등 위기 절차 관련 안건을 더해도 327건에 그쳤다. 전체 안건 100건당 1건 남짓이다. 사업·재무 개선 안건에는 연례 사업계획 승인도 포함돼 있어 실질적인 재건을 위한 논의는 이보다 적었을 가능성이 있다. 분석 대상 407곳 중 315곳(77%)은 3년간 사업·재무 개선 안건을 한 건도 올리지 않았다.


◇상폐기업, 자주 모였지만 출석률은 낮아

상장폐지된 기업 91곳과 위기 사유를 해소해 상장을 유지한 기업 38곳을 비교하면 이사회 운영에서 차이가 드러났다. 상장폐지 기업 이사회는 연간 개최 횟수 중앙값이 23.7회로 상장 유지 기업의 15.7회보다 많았다.

반면 이사 출석률은 상장폐지 기업이 74%로 상장 유지 기업의 93%보다 19%포인트 낮았다. 출석률을 확인할 수 있는 기업은 상장폐지 기업 71곳, 상장 유지 기업 26곳이다. 이사회가 더 자주 열렸지만 이사들의 참석률은 오히려 낮았다.

자금조달 안건의 비중도 상장폐지 기업에서 높았다. 안건 비중의 중앙값은 상장폐지 기업이 31%, 상장 유지 기업이 22%였다. CB·신주인수권부사채(BW) 관련 안건은 상장폐지 기업이 연간 4.3건(중앙값)으로 상장 유지 기업의 1.0건을 4배 이상 웃돌았다. 조달 자금의 사용 목적에서도 차이가 나타났다. 공시상 신고 용도 가운데 채무상환과 타법인 증권 취득이 차지하는 비중의 중앙값은 상장폐지 기업이 37%, 상장 유지 기업이 8%였다.

최대주주가 바뀐 시기에는 이사진 교체와 자금조달 안건도 함께 늘어났다. 위기 직전 3년 안에 최대주주가 한 번 이상 바뀐 비율은 상장폐지 기업이 59%로 상장 유지 기업(29%)의 2배였다. 분석 대상 전체에서 최대주주가 바뀐 해에는 신규 등기임원이 평균 4.3명 선임됐다.

최대주주가 바뀌지 않은 다른 해의 평균 1.5명보다 3배 가까이 많았다. 자금조달 안건도 최대주주가 바뀐 해에는 평균 12.0건으로 다른 해의 5.7건을 2배 이상 웃돌았다. 최대주주 교체와 이사진 재편, 자금조달 결의가 같은 시기에 집중되는 양상이 확인됐다.

위기 징후는 이사회 안건에 앞서 감사보고서에서도 나타났다. 감사의견 이력을 확보한 상장폐지 기업 90곳 가운데 40%는 위기 신호가 나오기 전 감사보고서에 계속기업 존속 불확실성이 기재됐다. 상장 유지 기업은 3%였다. 위기 신호가 나오기 전 비적정 감사의견을 받은 비율도 상장폐지 기업이 48%로 상장 유지 기업(24%)의 2배였다.

◇반대·기권 없는 이사회

견제 지표에서는 상장폐지 여부에 따른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다. 3년간 반대·기권이 한 건도 없었던 기업의 비율은 상장폐지 기업이 79%, 상장 유지 기업이 84%였다. 두 그룹 사이에 통계적으로 유의한 차이는 없었다. 3년간 반대·기권이 한 번이라도 나온 기업은 상장폐지 기업 19곳, 상장 유지 기업 6곳에 그쳤다.

사업·재무 개선 안건이 없었던 기업의 비율은 상장 유지 기업에서 오히려 높았다. 상장 유지 기업의 90%가 3년간 해당 안건을 한 건도 올리지 않았다. 상장폐지 기업의 비율은 65%였다. 재건 안건의 부재나 이사회 내 반대·기권의 부재만으로 상장폐지 여부를 구분하기는 어려웠다. 반대 없는 가결과 재건 논의의 부재가 상장 유지 여부와 무관하게 나타난 셈이다.

사외이사의 참석 여부에서도 공백이 확인됐다. 위기 직전 3년간 CB·BW·교환사채(EB) 발행 결의 중 공시에 사외이사 참석 여부가 기재된 641건을 살펴본 결과 72건(11%)은 사외이사가 한 명도 참석하지 않은 상태에서 의결됐다.

KH필룩스의 2020년 사업보고서에는 사외이사 3명의 출석률이 0%로 기재돼 있다. 그해 열린 84회 이사회의 사외이사 찬반란은 모두 불참으로 표시됐다. 같은 해 KH필룩스 이사회는 CB 발행과 금전대여 안건을 처리했다.

이사회 활동내역을 확인하기 어려운 사례도 있었다. 분석 대상 사업보고서 2376건 가운데 29건은 이사회 주요 활동내역 표가 보고서 어디에도 없었다. 18건은 감사 활동 표에만 이사회 개최 사실을 기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