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회로 재계의 이목이 쏠린다. 투자자 권리 보호가 글로벌 투자 환경의 필수요소로 자리잡았지만 한국 자본시장은 여전히 지배주주 중심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로 인해 기업가치가 고질적으로 저평가되는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발생했다는 게 정부의 진단이다.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은 상법개정안에 대해 자본시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기대한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지배주주를 견제하고 주주 전체로 균형을 기대한다는 의미다. 대표적으로 이상헌 iM증권 애널리스트는 “상법개정안은 지배주주의 과도한 사익 추구를 근절하려는 시도다”라고 평가했다. 정부 의도대로 상법이 개정되면 경영자가 본인의 이익을 위해 주주에게 손해를 끼치는 대리인 비용이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이사 충실의 의무 개정, 주주 간 균형 기대 이 애널리스트는 “지배구조와 소유구조는 엄연히 다르다”는 말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지배구조는 기업을 둘러싼 이해관계자의 관계를 조율하는 의사결정 매커니즘을 뜻한다. 지분 등을 따지는 소유구조와 차이가 있다.
이사회는 경영판단을 통해 기업의 실질적 운영체계를 좌우한다는 점에서 지배구조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기구다. 국내에서는 이사회 등 지배구조가 지배주주의 이익에 유리하게 작동하는 구조가 고착화했다는 게 이 애널리스트의 진단이다.
그는 “지배주주가 곧 경영자인 경우가 많다보니 소액주주와 이해가 종종 충돌한다”며 “경영자와 주주 사이에 이해가 상충하고 정보 비대칭이 발생하면 대리인 비용이 증가한다”고 말했다.
특히 기업이 합병하거나 분할하는 등 구조를 개편할 때 이런 현상이 많이 발생했다. 기업들은 대부분 승계, 지배권 강화, 법률 위험 회피 등 지배주주의 사적 이익을 늘리기 위한 목적으로 구조를 개편했는데 이 과정에서 소액주주가 소외될 때가 많다. 예컨대 기업 합병 및 매각 시 지배주주만 경영권 프리미엄을 누리는 일이 여기에 해당한다.
상법에서 △이사의 충실 의무가 개정되면 지배주주만을 위한 기업 구조 개편에 제동이 걸릴 것으로 예상됐다. 종전까지는 법에서 ‘회사를 위해’ 이사가 직무를 수행해야 한다고 규정했지만 상법이 개정되면 이사는 ‘회사 및 주주를 위해’ 일해야 하고 ‘전체 주주의 이익을 공평하게 대우’해야 한다.
이 애널리스트는 “이 문구 하나가 지배주주의 과도한 사익 추구를 견제하는 실질적 근거가 될 것”이라며 “지배주주와 일반 주주의 이해가 상충할 때 이사회가 전체 주주의 이익에 부합하는 의사결정을 내리도록 규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자칫 이사가 지배주주의 사적 이익을 위해 소액주주에게 불리한 결정을 내린다면 상법상 손해배상 책임, 형법상 업무상 배임죄로 추궁 당할 수 있다는 뜻이다.
◇"감사위원 분리선출+3%룰, 거수기 이사회 바꿀 것" 이 애널리스트는 “상법개정안 중 가장 파급력이 큰 제도는 감사위원 분리선출”이라고 강조했다. 상법개정안에 따르면 분리선출 방식으로 선임하는 감사위언 수를 종전 1명에서 2명로 늘려야 한다.
감사위원은 이사의 직무를 감시할 뿐 아니라 언제든지 이사에게 영업에 관한 보고를 요구할 수 있다. 만일 이사가 법령이나 정권을 위반해 회사에 회복할 수 없는 손해가 생길 염려가 생기면 주주를 위해 행위 중단을 청구할 수 있어 권한이 상당히 크다.
특히 3%룰 제도와 시너지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감사위원 분리선출 안건에서만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제도다. 지배주주의 영향력을 축소해 일반주주가 감사위원 선임에 실질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이 애널리스트는 “감사위원 분리선출 제도를 확대하면 지배주주와 완전히 무관한 외부 인물 2명이 이사회에 참여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며 “3%룰과 감사위원 분리선출 제도가 결합하면 주주 행동주의 펀드 등이 활성화하면서 주주의 이사회 감시 기능이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상법개정안으로 주주가 원하는 사외이사가 이사회에 진입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며 “지배주주와 무관한 인물이 단 한 명이라도 이사회에 참여하면 거수기 일색이던 이사회에서 반대의견을 개진하는 등 경영진 견제기능을 실질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유동성 할인·이해상충 등 지주사 디스카운트 요인 해소" 특히 지주사 주주가 특히 수혜를 볼 것으로 예상됐다. 이 애널리스트는 “지주사 기업가치 디스카운트의 핵심은 중복 상장으로 인한 유동성 할인과 이해상충 문제”라고 짚었다. 지주사가 사업자회사와 동시 상장되어 있는 경우 투자자의 시선이 사업자회사에만 쏠려 지주사 주가가 할인되는 구조라는 뜻이다.
중복 상장은 단순히 유동성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이 애널리스트는 “자회사 주주는 주가 상승을 원하고 모회사 주주는 배당만 원한다”며 “모회사와 자회사 주주 간 이해가 상충하면서 대리인 비용이 늘고 이는 곧 지배구조 악화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특히 한국은 이러한 중복 상장 구조가 일반적이기 때문에 지주사 디스카운트가 구조적으로 고착화돼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렇듯 지주사 밸류에이션에서 지배구조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며 “상법개정으로 이사회 견제 기능이 강화되면 주주 간 이해상충이 줄어 지배구조가 개선되고 이는 곧 주가에 반영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