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M&A가 흔해진 시대, 기업의 '국적'은 여전히 상징적·실질적 의미를 지닌다. 국내 기업이 해외 기업을 인수하거나 반대로 해외 기업이 국내 기업을 사들였을 때 단순한 소유권 이전 이상의 다층적인 변화가 발생한다. 지배구조와 계열사, 경영환경의 재편과 그 과정에서의 거버넌스 충돌 등이다. 글로벌 M&A를 앞둔 기업들이 미리 대비해야할 어젠다이기도 하다. theBoard는 국적 변화가 지배구조와 경영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를 조망해본다.
포시마크(Poshmark)는 미국의 당근마켓으로 불린다. 평범한 중고 플랫폼과 달리 지역기반의 커뮤니티와 소셜 기능이 결합돼 있다. 한국의 당근마켓이 2015년 출범했는데 포시마크는 그보다 4년이 빠른 2011년 설립됐다. 2021년 나스닥에 상장해 네이버 매각 직전까지 상장사의 지위를 유지했다.
포시마크는 더 이상 독립 상장사가 아니다. 네이버의 손자회사가 됐다. 상장사에서 비상장사로 변화했고 그룹 내로 편입됐다. 상장사 시절 이중주식 구조를 취했던 포시마크는 이제 단일 주주 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지배구조와 리더십은 연착륙을 거쳐 네이버로 완전히 옮겨오는 중이다.
◇나스닥 상장 이중주식 구조…창업자·VC에 의결권 집중
포시마크는 2011년 델라웨어에 법인을 세운다. 창업자는 마니쉬 찬드라(Manish Chandra)다. 소셜 쇼핑 플랫폼 Kaboodle을 만든 인물이다. 설립 후 뉴욕의 미디어 제작사인 허스트(Hearst)에 이 플랫폼을 매각하고 다시 포시마크를 만든다. 캘리포니아 대학교와의 인터뷰를 보면 중고 의류가 하나의 공동체를 만들어준다는 철학으로 꾸준히 리셀 플랫폼을 제작해온 것으로 보인다.
설립 후에는 벤처캐피털(VC)의 투자를 받으며 성장한다. 2021년 1월 나스닥에 상장한다. 포시마크는 클래스 A와 클래스 B의 이중주식 구조(Dual-Class Shares)를 택한다. 클래스 A 보통주는 1주당 1의결권, 클래스 B 보통주는 1주당 10의결권이 부여되는 구조였다. 상장 시점 기준으로 클래스 A는 시장에 상장·유통되는 주식, 클래스 B는 창업자와 주요 투자자가 보유하는 주식으로 설계됐다. 창업자와 초기 투자자들의 경영권을 방어하는 장치였다.
경제적 지분은 다수의 주주에게 분산하되 실질적인 의결권은 클래스 B 보유자들에게 집중된 형태다. 클래스 A의 주식 수가 더 많더라도 의결권은 창업자와 초기 투자자에게 과반 이상 밀어주는 구조가 된다. 실례로 2022년 말 포시마크의 발행주식 의결권의 77% 이상이 네이버의 인수를 지지했다. 이사와 임원들의 의결권만 집결해도 77%가 달성됐다.
출처: 미국증권거래위원회, 포시마크 공시
또 포시마크의 이사회는 찬드라 CEO와 경영진, 벤처캐피털 파트너 등으로 이뤄져 있었다. 결국 경영진의 의사판단이 이사회까지 직결돼 결정된다는 의미였다. 이때 포시마크가 상대해야 하는 핵심 이해관계자는 세 그룹이었다. 플랫폼을 사용하는 셀러·바이어 커뮤니티, 나스닥에서 지분을 매매하는 일반·기관투자자, 듀얼클래스 구조를 통해 의결권을 가진 창업자와 초기 투자자다.
변곡점은 2022년 10월이다. 네이버는 2022년 10월 포시마크의 발행주식 전량을 주당 17.90달러에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기업밸류는 약 12억달러로 책정됐다. 거래 후에는 클래스 A·B 보통주와 관련 파생증권은 모두 현금으로 청산됐고 포시마크는 나스닥에서 상장폐지됐다.
네이버의 손자회사로 편입하는 방식이었다. 인수목적 법인인 프로톤 페어런트(Proton Parent)를 설립하고 자회사 프로톤 머지 서브(Proton Merger Sub)를 구축한다. 머지 서브를 포시마크에 흡수합병시킨 후 존속법인으로 포시마크를 남긴다. 네이버-중간지주사인 프로톤 페어런트-포시마크로 이어지는 구조다.
거버넌스 측면에서는 다수 주주 상장사에서 단일 주주 비상장사로의 전환이다. 이전까지는 이사회가 네이버와의 합병을 승인하더라도 최종 승인 권한은 주주총회에 있었다. 합병 계약에 따라 포시마크 주주총회는 2022년 12월 열린 특별주주총회에서 합병안을 승인하고 2023년 1월 5일 거래가 종결됐다.
인수 이후 포시마크는 나스닥 공시 의무에서 벗어났다. '거래 완료 후 포시마크는 미국 기반의 네이버 완전 자회사로 전환되고, 더 이상 공개 시장에서 거래되지 않는다'고 명시돼 있다. 포시마크의 재무와 주요 지표는 네이버 연결 재무제표 안에서만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구조로 바뀐다.
네이버는 인수 후 일부 고용승계를 약속한다. 일정 기간 기존 복리후생을 유지하고 핵심인력에 대해서는 잔류 인센티브를 제공한다고 했다. 상장 폐지되지만 단일주주 지원으로 장기전략을 추진할 수 있다는 설명도 내놨다. 또 포시마크가 미국에 본사를 둔 독립 자회사로 남는다고 했다.
인수 직후 마니쉬 찬드라 CEO와 인수 전 경영진이 계속 포시마크를 이끌었다. 하지만 이사회와 주주 구성을 보면 주도권은 네이버로 넘어갔다. 전 이사회 멤버들은 인수와 함께 사퇴했다.
김남선 포시마크 CEO. 사진=포시마크
경영진도 바뀐다. 포시마크와 네이버는 2025년 8월 공시와 보도자료를 통해 찬드라 공동창업자가 10월 1일부로 CEO에서 물러나 이사회 내 전략 역할에 집중한다고 했다. 네이버 투자·재무를 총괄해 온 김남선 사장이 포시마크 CEO를 맡는다고 밝혔다.
김남선 CEO는 네이버에서 CFO와 투자·M&A, 글로벌 전략을 담당해 온 인물이다. 인수 이후에는 포시마크의 이사회에 합류해 이사회 의장을 맡아왔다. 이제는 포시마크의 일상 경영까지 책임지는 위치로 올라선 셈이다. 또 네이버의 주도로 이베이 출신의 헤더 프리드랜드 최고제품책임자(CPO)를 영입한다.
이로써 포시마크 지배구조의 무게 중심은 보다 분명하게 모회사 쪽으로 이동했다. 소유는 네이버 단일 주주, 이사회 의장과 CEO 모두 네이버 출신 인사가 맡는 구조로 정리됐다. 창업자는 공동의장·전략 자문 역할로 물러나면서 경영 전면은 네이버가 관리하는 체계에 가깝게 변했다.
지배구조 관점에서 보면 상장사 시절에는 포시마크 이사회가 창업자·VC·소액주주·기관투자자 등 다양한 주체의 이해관계를 들여다봐야 했다. 지금은 단일 대주주의 전략과 네이버 주주들의 평가에 더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구조다. 대신 사업 환경에 맞춰 장기 투자와 실험적인 시도를 할 수 있는 재량은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