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낙하산(Golden Parachute)은 국내 자본시장에서도 오래된 경영권 방어 수단이다. 창업주 및 오너에게 거액의 보상금을 줄 수 있는 규정을 둬 M&A가 어렵게 하는 방법이다.
1990년대 후반 우리나라에 널리 소개돼 최근까지 여러 기업이 도입을 시도하거나 성공했다. 다만 행동주의 펀드와 주주들의 존재감이 점차 확대되면서 부담을 느끼고 조항을 삭제한 곳도 많다.
상법 개정 등 외부 시장변화에 따라 경영권 방어수단을 넓혀야 한다는 재계의 주장과 투자자 보호가 먼저라는 반론이 부딪히면서 황금낙하산을 둘러싼 시장의 시선도 갈린다.
상장사 중 약 5%가 최소 1개 이상의 경영권 방어 수단을 정관에 명시하며 황금낙하산 제도를 직간접적으로 도입한 상황이다. 자본시장의 효율성을 방해하는 독소조항이란 비판도 받지만 투자를 위해 지분 희석이 불가피한 코스닥 기업들에겐 필요한 제도란 반론도 제기된다.
◇코스피 상장사 5%가 남겨둔 황금낙하산
국내에 황금낙하산 제도가 널리 알려진 건 IMF 외환위기 때다. 당시 한국은행이 미국 등의
선진국 사례를 모아 일종의 기업 방어 비책으로 소개했다.
적대적 M&A로부터 경영권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기업매수에 따라 핵심 경영진이 실직할 때 거액의 퇴직금과 저가에 의한 주식 매입권 부여, 잔여 임기동안의 상여금 지급 등과 같은 충분한 보상조건을 규정해야 한다는 설명이었다. 경영권이 불안했던 우리 기업들에게 정부 기관이
선진국은 이런 방어책도 사용한다는 방향성을 제시한 셈이다.
황금낙하산 제도를 도입하는 기업수는 꾸준히 증가 추세를 보인다. 정확한 데이터가 공식 집계된 바는 없지만 주요 연구원 보고서를 통해 추세를 확인할 수 있다.
자본시장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전체 상장사 2049개 가운데 405개사가 1개 이상의 경영권 보호 정관조항을 채택했다. 유가증권시장 상장사는 89개사에 해당했다. 한국상장사협의회와 한국경제인협회 등이 2024년 말 작성한 통계에 따르면 국내 코스피 상장사 중 5%가 황금낙하산 제도를 도입했다.
최근의 경향성을 보면 코스닥 기업 중 바이오 기업들이 잇따라 제도를 채택하면서 황금낙하산 제도를 중요한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쓰고 있다.
경영권 방어책으로서의 강도는 상당하다. 지급 금액 평균이 수백억원 수준이다. 수백억원 단위의 코스닥기업 M&A를 생각하면 기업들의 현금성 자산 대부분을 퇴직금으로 소진한 후 인수합병이 이뤄지게 만들어 M&A의 효익을 사라지게 한다.
황금낙하산과 함께 초다수결의제를 함께 채택하는 기업이 많았다. 경영권 방어 효과가 중첩되면서 경영진 교체의 문턱이 높아질 수 있다. 남길남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기존의 경영진을 바꾸기가 상당히 어려워지는 구조로 기업의 현금성 자산을 모두 퇴직금으로 주어도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기업들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지분 방어를 넘어 인수비용 상승 수단으로
2020년 이후 황금낙하산 제도를 채택한 기업들은 대부분 코스닥기업들이었다. 특히 대주주 지분이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기업들도 황금낙하산을 선제적으로 도입했다. 당장은 대주주 지분이 얀정적이지만 자사주 소각 등을 거치면 지배력이 약해질 수 있다. 선제적으로 경영권 방어책을 구비하는 패턴을 보인다.
일성아이에스는 2023년 3월 정기주주총회에서 정관 38조에 대표이사가 임기 중 적대적 인수합병으로 실직하거나 대표이사직을 수행하지 못하는 경우 통상적인 퇴직금 외에 150억원을 퇴직 후 7일 이내에 지급하도록 하는 조항을 신설했다. 같은 날 5대1 액면분할도 추진했다.
일성아이에스는 지난해 말 사업보고서 기준 자사주 비중이 46.15%에 달했다. 최대주주 지분은 38.19%다. 기관투자자를 포함한 소액주주 비중은 11.58%로 나타났다. 자사주 소각이 의무화된 상황에서 자사주 비중이 높은
일성아이에스는 자칫 소액주주 및 기관투자자들의 적대적 M&A에 노출될 수 있다. 황금낙하산 제도로 경영권 방어 효과를 노린 것으로 보인다.
대성홀딩스는 2023년 정기 주주총회를 통해 적대적 인수 또는 합병 방지를 위한 이사 선임 및 해임 요건 강화 조항을 신설했다. 적대적 인수 합병으로 인하여 기존 이사의 해임을 결의하는 경우 등에는 출석 주주 의결권의 4분의 3, 발행주식 총수의 3분의 2 이상의 수가 있어야 의결된다고 했다.
사외이사를 제외한 사내이사가 임기 중 적대적 인수합병으로 해임될 경우 퇴직금 외에 퇴직금의 20배를 14일 이내 지급하는 조항도 만들었다. 황금낙하산과 함께 이사 선임과 해임에 대한 의결 요건을 강화한 셈이다. 초다수결의제와 황금낙하산 제도를 패키지로 도입하는 과거의 사례와 맞물린다.
같은 해 대성에너지도 같은 정관 변경을 추진했다. 2023년 3월 정기주총에서 주주총회 결의방법과 이사 보수 및 퇴직금 조항을 바꾸며 적대적 인수 또는 합병 방지를 위한 이사 선임 및 해임 요건을 강화했다. 대성홀딩스와 특수관계인의 지분율은 72.73%다.
대성홀딩스는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 지분이 72.74%에 달한다. 지배주주의 지분이 이미 높은 회사까지 황금낙하산 성격의 조항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은 이 장치가 단순히 취약 지분 방어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인수비용 자체를 높이고 협상력을 공고히하는 수단으로 쓰이는 셈이다. 물론 최대주주 지분이 낮은 회사들의 불안 심리를 반영한 장치이기도 하다.
◇재계 "제한된 방어수단 보완 필요"
한국경제인협회 등 재계에서는 황금낙하산 등의 경영권 방어 정관을 사전적 대응장치로 봐야한다는 입장이다. 국내에 허용된 방어수단이 제한적인 상황에서 남아있는 몇 안되는 보호장비라는 의미다. 차등의결권이나 포이즌필 등 전통적인 경영권 방어수단이 폭넓게 허용되지 않아 적대적 인수 시도에 대비한 제한적 안전판도 부재하다고 봤다.
한국경제인협회 등이 의뢰해 발간한 연구결과 등을 참고하면 상법 개정으로 주주권 강화 흐름이 뚜렷해진 반면 기업의 방어수단에 대한 논의가 더디게 진행된다는 게 재계의 목소리다. 경제8단체는 상법 개정이 통과된 직후 입장문을 통해 경영권 방어수단 도입 등에 대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금낙하산이 시장에서 독소조항으로 인식되는 만큼 향후 쟁점은 제도의 존치 여부보다 어느 수준까지를 정당한 방어수단으로 볼 수 있는지, 또 주주가치 훼손 우려를 어떻게 줄일지에 맞춰질 것으로 진단된다.
남길남 연구위원은 "코스닥 기업은 상대적으로 지배주주 지분율이 높고 유통주식도 기관보다 개인 투자자 비중이 큰 편이나 소액주주의 활동이 확대되는 흐름이 나타났다"며 "최근 정책적으로 코스닥 시장 투자 저변이 확대되고 있는 만큼 행동주의와 소액주주의 활동, 기업의 대응 등 관련 흐름은 계속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