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법개정 바람을 타고 올해 주주총회에서 행동주의펀드들의 움직임이 활발해졌다. 국내 행동주의는 초기에 외국계가 주도하던 부정적인 이미지에서 최근 토종 행동주의 발흥으로까지의 변천사를 거쳤다. 일부는 지배구조 개선 등 긍정적 결과를 이끌어 낸 반면 일부는 소위 ‘먹튀’ 논란 등에 휘말리기도 했다. 향후 행동주의 활동이 더욱 확대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더벨은 행동주의펀드 활동의 명과 암을 조명하고자 한다.
한국 자본시장은 행동주의 펀드로 홍역을 치렀다. 초기 행동주의펀드는 외국계 기업 사냥꾼이 주도했다. IMF 외환위기 당시 아직 충분히 성장하지 못한 한국 자본시장을 외국계 벌처 펀드들이 농락했다. 기업의 약점을 노린 공격적 M&A로 기업 사냥꾼이란 부정적인 이미지를 축적했다.
시간이 지나 한국 자본시장도 성숙하고 토종 펀드들이 등장하면서 새 국면을 맞는다. 행동주의를 표방하며 여전히 먹튀를 노리는 펀드들이 있지만 과거 외국계 벌처펀드에 비하면 그 폐해가 줄었다. 반면 국내기업들의 저배당 해소 등을 통한 증시 저평가 해소를 주창하면서 자본시장의 합리성에 기여하는 행동주의 펀드들도 있다.
◇ 외국계 자본에 시달린 국내 행동주의 태동기
한국 자본시장의 행동주의 펀드 역사는 IMF 외환위기 직후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최초의 행동주의 펀드 사례는 1999년 미국 헤지펀드인 타이거가 SK텔레콤의 지분 취득 후 경영진 교체 및 사외이사 제도 도입 등을 요구하며 경영권을 위협한 사건이다. 이후 지분을 모두 매각하면서 단기간에 6300억원의 시세차익을 거두고 떠났다. 이는 행동주의펀드의 단기 차익 모델을 처음 각인시킨 사건으로도 평가받는다.
또 다른 사례도 SK그룹을 대상으로 발생했다. 영국계 소버린자산운용이 2003년 SK의 지분 14.99%를 확보하면서 최태원 회장 퇴진 등을 요구했다. SK는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우호지분을 늘리면서 방어했다. 소버린 역시 2년 여간의 투자 기간 동안 약 9000억원의 차익을 넘기고 떠나갔다. 그들이 요구했던 지배구조 개편은 이뤄지지 않았다.
이 밖에 엘리엇, 칼아이칸 등이 현대차와 KT&G 등을 대상으로 행동주의를 펼쳤다. 지배구조 재편을 요구했지만 대부분 단기간 시세 차익을 노리고 지분을 매각한 게 대부분이었다. 2010년대 중반까지는 주로 외국계 자본들이 국내 대기업들에 공격적인 위협을 가하는 모습이 행동주의의 이미지로 각인되었다.
2010년대 후반부터 KCGI, 얼라인 등 토종 행동주의 펀드들이 등장했다. 이들은 한국 태생 펀드라는 특징을 무기로 국내 기업들의 불합리한 지배구조를 직접적으로 겨냥했으며 주주환원을 강력히 요구했다.
이 무대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주역은 얼라인파트너스다. 얼라인의 등장 이후 행동주의 펀드의 흐름이 바뀌었다. 적은 지분을 투자한 뒤 소액주주와 연대해 주주들의 목소리를 관철시켰다. 대형 엔터테인먼트사의 거버넌스 구조를 바꿨으며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고질적 원인으로 지목받던 금융지주사들의 저배당 문화를 해소시키도 했다.
◇ 케이팝 대부마저 물러났다, 토종 펀드의 에스엠 지배구조 정조준
2022년 초 얼라인은 에스엠엔터테인먼트에 대한 행동주의를 개시했다. 얼라인의 지분은 1% 수준이었다. 얼라인에 따르면 에스엠은 매년 매출의 최대 6%를 라이크기획에 인세로 지급해왔다. 2021년 한 해 인세는 약 240억원이었다. 이에 얼라인은 부당한 인세 계약을 종료하고 독립적인 이사회를 구성하라고 요구했다.
실제로 에스엠은 라이크기획과의 계약을 조기종료했다. 이후 이수만 창립자가 퇴진하면서 카카오와 하이브가 에스엠 경영권을 놓고 겨뤘다. 최종적으로는 카카오가 승자가 되면서 ‘에스엠 3.0’이라는 새 시대가 도래했다.
얼라인이 확보한 지분은 얼마 되지 않는다. 과거 외국계 펀드들이 유의미한 지분을 확보한 뒤 단기 시세차익만 노린것과는 대비된다. 주주환원과 대의 명분을 무기로 지배구조 개선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금융지주사들의 변화도 주목할 포인트다. 얼라인은 국내 금융지주사 지분을 확보한 뒤 주주환원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여기에 더해 정부의 기업가치제고(밸류업) 정책이 더해지며 지배구조개편, 주주환원, 주가 상승이란 선순화이 이뤄졌다.
KB, 신한, 하나 등 주요 금융지주가 중장기적으로 주주환원율을 50% 수준으로 올리겠다는 약속을 내놨다. 실제로 이후 금융지주들은 자사주 매입 소각 및 배당 확대 등을 실시하면서 주가가 크게 개선됐다.
한국거래소가 산출하는 KRX 300 금융지수를 보면 2023년 초 716포인트대에서 현재 2012포인트 수준으로 약 3배 상승률을 보이고 있다.
아직 토종행동주의 펀드들에 대한 평가를 내리긴 섣부르다. 얼라인과 달리 단기 시세차익을 노린 행동주의 펀드들의 폐해들도 다수 목격된다. 행동주의를 표방하고 공세를 취하다가 단기간에 지분을 매각하는 사례도 다수다. 다만 토종 행동주의 펀드들은 과거 외국계 기업 사냥꾼과는 다른 패턴을 보인다는 점이 긍정적이다.
홍지연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최근 국내 행동주의펀드 활동이 활발해지는 가운데 지배구조 개선 및 주주환원 정책과 관련된 다양한 주주제안으로 참여하고 있다"며 "다만 단기적인 성과뿐 아니라 기업지배구조 개선과 장기적인 주주가치 제고로 이어지는지에 대한 객관적이고 엄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