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행동주의 펀드 운용역이 기자를 만나 한숨을 쉬었다. 이 운용역은 몇달 전 한 상장사 창업주와 비공개로 대화할 기회를 얻었고 배당을 늘릴 것을 요구했다. 창업주는 그 자리에서 제안을 수락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정작 자신은 차등배당을 통해 배당을 적게 받아갔단다. 수십 년간 회사를 경영하며 숱한 위기를 극복해온 그 입장에선 혹시 모를 위기에 대비해 한 푼이라도 많은 돈을 남겨둬야 한다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주가를 올리고 싶은 운용역과 기업을 잘 경영하고 싶은 창업주 두 사람 입장 모두 이해 못할 건 없다. 중요한 건 두 인식 간 간극을 메우는 일이다. 이 얘기를 들은 재계 관계자는 우리나라 기업 상당수가 여전히 '규모의 경영'에 익숙하다는 점을 꼬집었다. 많은 창업자들이 공장을 늘리고 매출과 영업이익을 키우는 데 주력해 온 결과 자본을 어떻게 배분해야 기업가치가 높아지는지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취지였다.
문제는 상황이 바뀌었다는 데 있다. 우상향 성장 시대에는 현금 축적이 중요한 가치였는지 몰라도 저성장 자본 효율의 시대에는 가치 할인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투자자는 기업이 얼마나 많은 현금을 쌓아두고 있는지보다 그 돈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활용하는지를 눈여겨 볼 수밖에 없다. 투자할 곳이 있다면 투자하고 여의치 않다면 배당을 확대하거나 자사주를 매입해 자본 효율을 높이면 주가 상승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게 이사회다. 한 기업의 사업 내용은 그 기업 경영진만큼 잘 아는 사람이 없을 테지만 자본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운용하는지는 시장 전체 의견을 듣지 않고선 판단하기 어려울 수 있다. 기업 활동에 대한 외부 평가를 감안해 회사 내에서 의견을 내는 건 이사회 역할 중 하나다. 창업주가 현금이나 현금성자산을 계속 쌓아 두고 있다면 시장이 납득할 만한 이유를 요구해 설명할 의무가 있다.
최근 금융당국은 상장사 상폐 기준을 대폭 강화했다. 상폐 리스크를 안고 있는 상장사들은 로펌에 해결 방안을 문의하곤 하는데 로펌이라고 뾰족한 수가 있을리 없다. 결과적으로 주가를 올려야 해결되는 문제인데 그러려면 투자자가 납득할 만한 거버넌스를 갖추는 게 먼저다. 그 첫걸음은 이사회 구성을 바꾸는 데 있다. 지금의 기업 이사회는 회사와 시장 간 다리 역할을 제대로 이행하고 있는가. 진지하게 되돌아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