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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보드 인터뷰

정진호 케이뱅크 의장 "이사회는 실패를 본다"

대표-의장 분리 후 첫 독립이사 의장…사전설명·회의시간부터 손질

조은아 기자

2026-08-11 11:39:00

"경영진은 성장의 가능성과 속도를 봅니다. 이사회는 그 성장이 지속 가능한지, 전제가 제대로 갖춰졌는지를 봅니다."

정진호 케이뱅크 이사회 의장(사진)은 경영진과 이사회의 역할을 이렇게 구분했다. 경영진이 성공 시나리오를 짠다면 이사회는 반대편에서 실패 가능성을 점검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성장 과정에서 건전성과 자본적정성이 흔들릴 가능성을 살피고 예상과 다른 상황에 대비하는 것이 이사회의 몫이라고 봤다.

올해 케이뱅크는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을 분리하고 소비자보호위원회와 ESG위원회를 신설했다. 새로 독립이사로 합류해 의장을 맡은 정 의장은 이를 케이뱅크 거버넌스가 한 단계 진화한 것으로 평가했다. 취임 이후에는 제도 변화가 실제 이사회 운영으로 이어지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30년 은행맨의 눈…"성장과 위험은 따로 보지 않는다"

정 의장이 이사회에서 강조하는 것은 성장과 위험을 따로 보지 않는 시각이다. 30년 넘게 은행에서 일하며 익힌 판단 방식이 바탕에 있다.

정 의장은 KB국민은행 영업현장을 시작으로 데이터 분석과 전략기획을 거쳐 KB금융과 국민은행의 디지털 전환까지 두루 경험했다. 현장에서 파악한 고객의 요구를 데이터로 검증하고 이를 다시 재무지표와 전략으로 연결하는 과정을 경험한 것이 현재의 판단 방식에도 영향을 미쳤다.


KB금융 재직 시절 윤종규 전 회장과 일한 경험은 자신의 '행운'이라고 표현했다. 성장성·수익성·건전성을 따로 보는 데 그치지 않고 BIS비율, 위험가중자산(RWA), 순이자마진(NIM) 등 핵심 지표가 어떻게 맞물리는지를 보는 훈련을 받았다고 했다. 정 의장은 "금융회사의 성과와 위험을 감정이 아닌 숫자와 정교한 인덱스로 냉철하게 판단하는 안목을 배웠다"고 말했다.

시중은행을 떠나 인터넷은행 이사회에 들어와서는 새로운 면도 발견했다. 밖에서는 디지털 채널의 편의성과 속도에 주로 눈이 갔지만 직접 들어와 보니 조직 자체의 생산성과 민첩성이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640여명의 인력으로 은행에 필요한 기능을 수행하고 평균연령도 36.5세로 젊다. 특히 생성형 인공지능(AI)을 업무에 접목하는 속도가 빨랐다. 실제 케이뱅크에서는 전 직원의 40%가량이 광고 심의와 이미지 제작 등 업무에 AI를 활용하고 있다.

정 의장은 시중은행과 인터넷은행의 차이를 우열의 문제로 보지는 않았다. 시중은행이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촘촘한 내부통제와 정교한 리스크 관리 체계를 갖췄다면 인터넷은행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고객의 불편을 빠르게 포착하고 서비스로 연결하는 민첩성과 실행력이 강점이라고 봤다. 인터넷은행이 지속적으로 성장하려면 이러한 민첩성에 시중은행 수준의 안정성과 리스크 관리 역량을 결합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성장 여력에는 상당한 자신감을 보였다. 정 의장은 카카오뱅크를 '배울 게 많은' 벤치마크로 평가하면서도 케이뱅크가 빠르게 추격할 것으로 전망했다. 자본여력과 개인사업자(SOHO)·중소기업(SME) 대출 성장 기반, 건전성·리스크 관리 능력, 낮은 비용구조 등을 근거로 들었다.

그는 "카카오뱅크를 따라갈 수 있는 유일한 세컨티어는 케이뱅크라고 개인적으로 본다"며 "2~3년 내에는 현재 카카오뱅크의 절반에서 3분의 2 수준까지 캐치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케이뱅크는 가계대출 규제가 강화되는 가운데 개인사업자와 중소기업 금융으로 성장축을 넓히고 있다. 개인사업자대출은 1년 만에 1조6000억원에서 3조3000억원으로 늘었다. 다만 정 의장은 단기간에 자산을 급격하게 확대하는 방식에는 선을 그었다. 과거 시중은행에서 기업대출을 빠르게 늘렸다가 부실을 정리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 경험 때문이다. 카카오뱅크와의 격차를 좁히는 과정에서도 신용평가모형을 고도화하고 건전성을 통제하며 성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거버넌스 자신감…"견제하되 막지 않고, 지원하되 종속되지 않아야"

정 의장은 케이뱅크의 거버넌스 변화에도 자신감을 보였다. 의장 취임 후에는 제도 개편이 실제 회의에서 작동하도록 운영 방식에 공을 들였다. 대표적인 것이 본회의에 앞선 사전설명이다.

정 의장은 안건을 미리 설명하는 것보다 어떤 방식으로 듣느냐가 중요하다고 봤다. 이사들이 개별적으로 설명을 들으면 자신이 궁금한 부분을 확인하는 데 그치지만 여럿이 함께 들으면 서로 다른 전문성과 경험에서 나오는 질문을 공유할 수 있다. 다른 이사가 짚은 위험에서 미처 생각하지 못한 쟁점을 발견하고 하나의 질문이 또 다른 질문으로 이어지면서 논의의 폭도 넓어진다는 설명이다.

실제 케이뱅크는 본회의에 앞서 가급적 이사들이 함께 사전설명을 듣고 질의한다. 일정이 맞지 않으면 그룹을 나누거나 비대면으로 참여한다. 여기서 나온 질문과 의견은 최종 안건에도 반영된다. 사전설명을 단순한 안건 전달이 아니라 이사회 토론의 시작점으로 활용하는 셈이다.

정 의장은 자신의 발언 순서도 뒤로 미룬다. 초반부터 결론을 주도하기보다 각 이사가 소수 의견과 우려까지 충분히 내도록 한 뒤 고객 편익과 리스크 통제, 자본 여력 등 판단 기준을 중심으로 쟁점을 정리한다. 그는 이를 '충분한 토론, 명확한 쟁점, 책임 있는 결론'이라고 설명했다.

충분한 토론을 위해 회의 시간도 조정했다. 정 의장은 "점심시간 이전에 이사회를 하면 점심시간이 데드라인이 된다"며 "소위원회는 오전에 하고 본이사회는 점심 이후에 해 논의가 길어져도 충분히 할 수 있도록 하자고 했다"고 말했다.

정 의장은 회사를 빠르게 이해하되 내부의 시각에 익숙해지는 것은 경계했다. 그가 세운 원칙은 "빠르게 배우되, 익숙해지기 전에 고객과 시장의 눈으로 질문하는 것"이다. 회사 내부의 효율성뿐 아니라 고객에게 설명 가능한지, 사고 발생 시 피해구제가 가능한지, 주주와 감독당국의 눈높이에서도 받아들일 수 있는지를 안건 판단의 기준으로 삼는다고 했다. 케이뱅크가 고객 1645만명, 수신 30조원, 여신 20조원 규모로 성장한 만큼 안정적인 자산관리와 리스크·내부통제 체계를 갖추는 것도 이사회가 살펴야 할 과제로 꼽았다.

경영진과의 관계에서는 이사회의 참여 원칙을 '초기 공유, 원칙 설정, 실행 존중'으로 정리했다. 전략 수립 초기부터 방향을 공유받되 이사회는 리스크 한도와 자본 여력, 소비자보호 등 경영진이 지켜야 할 '경계선(Boundary)'을 설정한다. 그 안에서 구체적인 실행과 성과 창출은 경영진의 자율과 책임에 맡겨야 한다고 봤다.

정 의장은 "견제하되 막지 않고, 지원하되 종속되지 않는 관계가 가장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대표이사가 성공 시나리오를 실행한다면 의장은 그 반대편에서 실패 가능성을 짚어 독립적인 이사들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도록 토론 환경을 만들고 감독기능을 수행해야 한다는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