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시행된 개정 상법은 상장사 이사회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때문에 비상장사와 상장사 사이의 거버넌스 측면에서 간극이 벌어질 가능성이 제기된다.
심재만 클레어인베스트먼트 대표(
사진)는 이러한 환경에서 비상장사도 상장사처럼 독립이사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필요성의 근거는 소액주주 보호가 아니라 기업의 생존이다. 그는 비상장사에서 독립이사의 역할을 화재보험에 비유하기도 했다.
◇독립이사 보험 같은 역할, 비상장사와 상장사 규율 간극 좁혀야

심 대표는
삼성증권,
하나증권 자본시장본부장을 지낸 정통 IB맨이다. 이후 시몬느자산운용 PE부문 대표를 담당했고 현재는 사모펀드(PEF) 운용사 클레어인베스트먼트 대표로 코넥스 상장사인 인터로이드 독립이사도 맡고 있다. 앞서 코스닥 상장사 신라에스지 독립이사를 역임한 경험도 있다.
심 대표는 비상장사와 상장사간 규율 간극을 좁힐 필요성이 있다고 봤다. 비상장사도 전문성을 갖춘 독립이사를 확보해 위험에 대비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그는 “전문성을 갖춘 독립이사는 비상장사에 화재보험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며 “회사 존립이 걸린 대규모 위기를 예방하는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심 대표는 과거 키코(KIKO) 사태를 예로 들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원·달러 환율이 치솟으면서 환헤지 목적으로 통화옵션 상품에 가입했던 수출 중소기업들이 대규모 손실을 입었다. 금융당국 자료 등에 따르면 피해 규모만 3조2000억원 수준으로 780여개사가 피해를 입었고 이 가운데 110여개사 폐업, 부도, 법정관리, 워크아웃 등으로 부실화됐다.
심 대표는 키코 사태가 중소기업 내 전문가 부재에 따른 결과로 해석했다. 전문가인 독립이사를 확보했다면 애초에 위험을 회피할 수 있었다는 진단이다. 실제로 금융상품에 대한 이해를 갖춘 대기업들은 키코 사태에 휘말리지 않았다.
그는 “지방 중소기업들이 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소문에 대거 가입했지만 정작 내부에서 파생상품의 구조와 위험을 말해줄 사람이 없었다”며 “손실에 하방이 없는 구조라는 점을 한 사람이라도 설명하고 ‘안 됩니다’라고 이야기했다면 피해가 크게 줄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상황은 중소기업이 대부분인 비상장사에서 현재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게 심 대표의 시각이다. 심 대표는 “오너가 능력이 없거나 나쁜 게 문제가 아니라 중소기업 내에 인적자원이 없어서 생기는 문제”라며 “매출이 수천억원에 이르는 비상장사도 오너의 의사결정을 검증해주는 시스템을 갖춘 곳이 소수인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비상장사 독립이사 활용성 커, 비용 부담되면 인센티브로 유인해야
심 대표가 보는 독립이사의 역할은 크게 두 가지다. 첫번째는 치명적 리스크의 제거다. 대규모 투자나 M&A, 복잡한 금융상품 가입 같은 안건을 놓고 이사회에 제대로 조언할 사람이 존재한다면 기업이 위험을 회피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두번째는 성장 조언이다. 심 대표는 “중소기업은 오너 단독 판단으로 경영이 이뤄지는 경우가 많고 누구도 이견을 내지 못한다”며 “사회적 경험이 축적된 독립이사가 의사결정에 참여하면 해당 기업이 돈 주고 살 수 없는 조언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독립이사와 고문·자문역과 차이도 분명하다고 설명했다. 심 대표는 “등기이사인 독립이사는 책임과 권한 측면에서 고문이나 자문과는 비교할 수가 없다”며 “독립이사의 노력의 무게가 큰 만큼 오너가 느끼는 부담도 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이 대부분인 비상장사가 독립이사를 활용하기 위한 관건은 비용이다. 독립이사 보수가 부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심 대표는 보수를 감당할 수 있는 기업에는 독립이사 선임 의무를 지우고 그렇지 못한 기업에는 인센티브 형태의 유인을 설계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심 대표는 “정부 보증이나 정책자금, 연구개발(R&D) 지원을 받는 기업 심사에서 독립이사를 둔 경우 가점을 주거나 보수 일부를 지원하는 방식도 가능하다"며 "기업이 위험에 노출돼 사회적 비용을 소진하는 것보다 이런 장치를 통해 성장하는 편이 정부 입장에서도 훨씬 나은 결과"라고 말했다.
독립이사 관련 규율의
대상을 넓힌 사례로는 영국을 들었다. 영국은 BHS·카릴리온 등 대형 비상장기업의 잇단 붕괴를 계기로 2018년 '회사(기타 보고) 규정'을 도입해, 직원 2000명 초과 등 요건을 충족하는 비상장기업 약 2000곳에 지배구조 공시를 의무화했다. 독립이사 선임을 강제하지는 않지만 비상장사도 지배구조를 설명하도록 했다.
심 대표는 비상장사들이 독립이사 선임을 규제로 받아들이지 말아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그는 "우리나라 기업 중에 오너 혼자 잘해서 성장한 사례는 드물다"며 "대부분의 기업이 국가와 사회의 지지를 받았던 만큼,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어도 그 기업이 지는 사회적 책임과 비용은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