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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보드 인터뷰

"경청하는 회장, 토론하는 이사회"…김해경 독립이사가 본 롯데

"충분히 준비하고 치열하게 토론"…숫자보다 지속가능성, 감시보다 파트너십 강조

조은아 기자

2026-08-07 08:27:01

"은행에 있을 때는 독립이사를 경영진에게 태클을 거는 비판자 역할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직접 독립이사가 되고 보니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KB국민은행에서 37년간 근무하고 KB신용정보 대표를 거쳐 2022년 롯데지주 이사회에 합류한 김해경 독립이사(사진)에게 최근 몇 년은 새로운 산업과 이사회 문화를 익혀가는 과정이었다.

금융권에서 대부분의 경력을 보낸 그에게 화학과 바이오는 낯선 산업이었다. 이사회에 합류한 뒤 관련 자료를 찾아보고 외부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사업을 익혔다. 경험이 많은 선배 독립이사가 회의 전날부터 자료를 검토하고 질문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며 독립이사의 역할도 새롭게 배웠다.

그는 독립이사의 역할을 '조언자'로 정의했다. 객관적인 시각에서 회사가 놓칠 수 있는 부분을 살피고 더 나은 의사결정을 돕는 역할이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거수기가 돼서도 안 되지만 태클을 걸기 위해 존재해서도 안 됩니다. 회사가 더 좋은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각자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조언하는 파트너가 독립이사라고 생각합니다."

김 이사의 설명은 자연스럽게 롯데지주 이사회의 운영 방식으로 이어졌다. 그가 5년째 경험하고 있는 롯데지주 이사회는 준비와 토론을 무엇보다 중시하는 이사회였다.

◇안건은 미리, 토론은 치열하게…'준비하는 이사회'

김 이사가 가장 먼저 꼽은 롯데지주 이사회의 특징은 준비를 중시하는 문화다. 정기 이사회 외에 사전회의와 위원회 활동이 더해져 독립이사들은 한 달에 서너 차례 회의를 한다. 회사는 검토 시간을 확보할 수 있도록 안건을 미리 전달하고, 독립이사들은 이를 검토한다. 독립이사들이 오히려 "자료를 더 일찍 달라"고 요청할 정도다.

김 이사는 "공부하지 않으면 의견을 낼 수 없다"며 "투자와 실적, 사업계획을 제대로 이해해야 토론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사전회의는 형식적인 안건 설명 자리가 아니다. 안건마다 수시간씩 토론이 이어지고 설명이 부족하면 해당 계열사 임원을 다시 불러 추가 설명을 듣는다. 필요하면 자료 보완도 요구한다. 본 이사회는 그렇게 정리된 의견을 토대로 최종 논의와 의사결정을 하는 자리다.

합류 초기 선배 독립이사의 준비 과정은 김 이사에게도 강한 인상을 남겼다. 당시 감사위원장은 사전회의 하루 전 감사조직을 만나 주요 내용을 점검했다. 무엇을 확인하고 어떤 질문을 준비해야 하는지를 곁에서 보며 역할을 배웠다. 그런 선배들의 모습을 보며 그는 "롯데지주 독립이사들은 정말 지독하게 성실하다"며 "형식적으로 참석해 찬반만 표시하는 분위기가 아니라 충분한 검토를 거쳐 의견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있다"고 말했다.

준비는 회의실 밖에서도 이어진다. 독립이사들은 롯데칠성음료롯데케미칼 등 주요 계열사를 방문해 현장을 살피고, 관련 자료를 살펴보며 사업 이해의 폭을 넓혔다. 그는 "지주 독립이사의 장점은 다양한 사업을 함께 볼 수 있다는 점"이라며 "은행에서는 접하지 못했던 산업을 새롭게 배우는 과정 자체가 재미있다"고 말했다.


◇신동빈 회장 "말보다 경청"…의견 개진·반영 이어져

김 이사가 인상 깊게 본 또 하나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회의 방식이다. 신 회장은 특별한 일정이 없는 한 대부분의 이사회에 참석하고, 일본에 머물 때도 화상으로 참여한다. 특히 회의에서 자신의 의견을 앞세우기보다 독립이사들의 이야기를 듣는 편이라고 했다. 김 이사는 "말을 많이 하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독립이사들의 의견을 충분히 듣고 꼭 필요한 부분이 있으면 마지막에 직접 설명도 한다"고 말했다.

독립이사와 회사의 의견이 항상 일치하는 건 아니다. 다른 의견이 나오면 회사가 이를 보완해 다시 설명하고 이사회는 다시 논의한다. 김 이사는 독립이사들이 제시한 의견이 실제 의사결정에 반영된 경우도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는 "독립이사들이 충분히 의견을 개진하고 회사도 이를 잘 받아들이는 편"이라며 "궁금한 점을 얘기하면 회장님이 그 자리에서 직접 설명할 때도 있어 충분히 소통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말했다.

롯데가 최근 계열사 사장단과 독립이사를 대상으로 진행한 인공지능(AI) 교육에서도 신 회장의 참여 방식이 드러난다. 신 회장 주도로 마련한 자리에서 참석자들은 강의를 듣는 데 그치지 않고 프로그램과 홈페이지를 만들어보는 실습도 진행했다. 신 회장 역시 이틀간 전 일정에 참석했다. 김 이사는 "AI는 기술만의 문제가 아니라 투자비용과 정보 활용 범위, 인력 운영까지 연결되는 사안이어서 이사회도 구체적으로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5년차에 바뀐 시야…"단기 실적보다 미래 지속가능성 먼저"

독립이사 5년차에 접어들면서 김 이사가 가장 크게 달라졌다고 느끼는 것은 판단의 기준이다. 처음에는 투자 타당성과 실적, 사업계획처럼 눈앞의 숫자를 우선 살폈다. 그는 "지금은 이 결정이 10년 뒤에도 회사에 도움이 될지, 지속 가능한 선택인지, 회사가 리스크를 감내할 수 있는지를 먼저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시야의 변화는 이사회 구성에 대한 생각으로도 이어졌다. 김 이사는 KB금융 계열사 첫 여성 최고경영자(CEO)에 이어 롯데지주 첫 여성 독립이사로 활동했다. '첫 여성'이라는 수식어에는 후배들에게 길을 열어야 한다는 책임감도 따랐다. 그는 "여성 후배들이 뒤를 이어갈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남들보다 두세 배 더 잘하려고 노력했다"며 "롯데지주에서도 여성 독립이사로서 유연한 분위기를 보태고 금융인으로서 디테일을 챙기려고 했다"고 말했다. 최근 롯데지주에 또 다른 여성 독립이사가 합류한 것도 의미 있게 받아들였다.

다만 다양성을 성별만의 문제로 보지는 않았다. 김 이사가 강조한 것은 전문성과 경험의 다양성이다. 그는 "한 사람이 금융도 알고 법률도 알고 화학도 알고 글로벌 사업도 다 알 수는 없다"며 "서로 다른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야 각자가 보지 못한 부분을 채워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생각은 실제 이사회 운영에서도 확인된다. 독립이사들은 공식 회의 외에도 자발적으로 만나 의견을 나누고, 임기를 마친 독립이사들과도 관계를 이어간다. 금융과 법률, 학계, 글로벌 경영 등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이사들이 각자의 지식과 경험을 공유하는 자리다.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나눌 수 있는 구조가 중요하다는 그의 설명과 맞닿아 있다.

좋은 독립이사의 조건을 묻자 답은 결국 '조언자'로 돌아왔다. 김 이사는 "회사를 가장 잘 알고 잘되기를 바라는 사람은 경영진"이라며 "독립이사가 자신을 경영자라고 생각해 과도하게 개입해서도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색안경을 끼고 태클을 걸 사안을 찾는 사람도, 회사 편에 서서 잘못에 눈감는 사람도 좋은 이사는 아니다"며 "회사를 충분히 이해하고 애정을 갖되 독립성을 잃지 않고, 회사가 더 오래 성장할 수 있도록 옆에서 방향을 잡아주는 사람이 좋은 독립이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