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요 대기업 이사회는 보통 7명 안팎으로 꾸려진다.
고려아연은 다르다. 현재 이사만 14명, 국내 대기업 평균의 거의 2배다. 경영권 분쟁이 정점이던 한때는 무려 19명까지 불어났다. 지금은 그때보다 줄었다지만, 여전히 국내 어느 대기업과 견줘도 압도적으로 큰 규모다.
다음 달 임시주주총회를 거치면 이사회는 다시 상한선인 19명까지 채워질 수 있다. 이는 지난해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 ISS가 "이 정도면 충분하다"며 제시했던 16명마저 훌쩍 뛰어넘는 규모다. 경영권 분쟁이 길어질수록
고려아연의 이사회는 국내 기업의 '상식'에서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
◇주요 상장사 평균 7.2명…고려아연은 14명
theBoard가 2025년 말 기준 국내 10대 그룹과 4대 금융지주 주요 계열사 81곳의 등기이사 584명을 전수 분석한 결과, 회사당 평균 이사 수는 7.2명으로 집계됐다. 전체 조사
대상 가운데 7명으로 이사회를 꾸린 곳이 37곳(45.7%)으로 가장 많았다.
고려아연에서는 현재 14명의 이사가 활동하고 있다. 최윤범 회장 측으로 분류되는 이사가 9명,
영풍·MBK 측이 5명이다. 주요 상장사 평균과 비교하면 약 1.9배 수준이며 이사회 규모가 상대적으로 큰 4대 금융지주의 평균(10명)도 훌쩍 웃돈다.
고려아연은 원래도 평균보다 큰 이사회를 운영해왔다. 2010년부터 2021년 초까지 9명 체제를 유지하다 2021년 11명, 2024년 13명으로 점차 몸집을 키웠다.
경영권 분쟁은 이미 컸던 이사회를 한 단계 더 키웠다. 분쟁 직전인 2024년 6월 말 이사회는 사내이사 3명, 기타비상무이사 3명, 독립이사 7명 등 총 13명이었다. 이후 2024년 9월
영풍·MBK 측이 신규 이사 14명의 선임을 요구했다. 이에
고려아연은 이사회 운영의 안정성과 효율성 저하를 막겠다는 명분으로 이사 수를 최대 19명으로 제한하는 정관 변경을 추진했다.
실제로 지난해 1월 임시주총에서
고려아연이 추천한 독립이사 7명이 선임되면서 이사회는 상한선인 19명까지 늘어났다. 이후 법적 공방과 일부 이사의 임기 만료 등을 거치며 올해 3월 현재의 14명 체제로 재편됐다.
◇내달 최대 19명으로 재확대 가능성…평균 2.6배
이사회 규모는 다시 커질 가능성이 높다.
고려아연은 다음 달 9일 임시주총에서 집중투표 방식으로 독립이사 4명을 선임하고 감사위원회 위원이 되는 독립이사 1명을 별도로 선출한다. 5명이 모두 선임되면 현재 14명인 이사회는 정관상 상한인 19명에 다시 도달하게 된다.
19명은 조사
대상 주요 상장사 평균(7.2명)의 2.6배에 이르는 수치다. 과거 9명에서 점차 확대돼 온 과정을 감안하더라도 분쟁 이후 급격히 비대해진 셈이다.
이사회 규모는 지난해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도 핵심 쟁점이었다. 당시 글로벌 의결권 자문 ISS는
영풍·MBK가 추천한 후보 14명 가운데 4명만 선임할 것을 권고했다. 기존 이사진과 합쳐 16명 안팎으로 구성하는 것이 기동성과 효율성을 유지하면서도 새로운 시각과 견제 기능을 확보하는 데 적절하다는 판단에서였다.
고려아연 역시 정관 개정 당시 "이사회가 지나치게 커지면 개별 이사의 책임과 권한이 분산되고 안건 심의 기능이 떨어질 수 있다"고 밝혔다. 당시 설정된 19명은 적정 규모라기보다 무제한 확대를 막기 위한 마지노선에 가까웠다.
반면 경영권 분쟁을 거치며 양측 인사가 이사회에 함께 참여하게 된 점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현재
고려아연 이사회에는
영풍·MBK 측 인사 5명이 참여하고 있다. 다가오는 임시주총에서도 독립이사 4석을 양측이 2석씩 나눠 가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결국 관건은 대표성과 효율성 사이의 균형이다. 주요 상장사의 2배를 웃도는 대형 이사회가 현실화할 경우 다양한 주주의 목소리를 수렴하는 동시에 신속한 의사결정과 개별 이사의 책임성을 어떻게 담보할지가 핵심 과제로 꼽힌다.
독립이사로 재직 중인 한 거버넌스 전문가는 "이사회가 실질적으로 기능하기 위한 적정 규모는 통상 5~8명 안팎으로 본다"며 "의사결정의 지연뿐 아니라 비대해진 이사회 운영에 따르는 비용 증가 역시 주주 가치를 훼손할 수 있는 만큼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