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을 움직이는 힘은 무엇인가. 과거에는 뛰어난 개인 역량에 의존했다. 총수의 의사결정에 명운이 갈렸다. 오너와 그 직속 조직이 효율성 위주의 성장을 추구했다. 하지만 투명성을 중시하는 시대로 접어들면서 시스템 경영이 대세로 떠올랐다. 정당성을 부여받고 감시와 견제 기능을 담보할 수 있는 이사회 중심 경영은 피할 수 없는 흐름이다. 이사회에 대한 분석과 모니터링은 기업과 자본시장을 이해하는 중요한 척도다. 기업 이사회 변천사와 시스템 분석을 통해 바람직한 거버넌스를 분석해본다.
한국과 독일 경제를 떠받치는 중심축은 제조업이다. 방산, 조선, 완성차 등 국내 대표 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성과를 내며 한국은 독일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제조 강국으로 부상했다. 최근에는 국내 기업들이 독일 제조업체들을 직접 경쟁 상대로 지목하는 사례도 잦아졌다.
하지만 이사회 구조에서는 차이가 분명하다. 독일은 이원 이사회제를, 한국은 단일 이사회제를 채택하고 있다. 이 시점에서 두 국가 제조기업 간 지배구조 차이를 들여다보는 것은 한국 제조업이 강국을 넘볼 만큼 성장했기 때문이다.
특히 제조업은 대규모 설비 투자, 복잡한 공급망과 고용 구조 등 산업 특성상 이사회의 의사결정이 기업 경쟁력에 큰 영향을 미친다. 여기에 이재명 정부가 노동이사제 논의를 다시 꺼내면서 국내 기업들도 다양한 이사회 모델을 살펴볼 필요성이 커졌다.
◇'주주자본주의' 한국, 단일 이사회 중심
우리나라와 독일 모두 경영진과 이사회 체계를 구축해 뒀다. 국내의 이사회 체제는 익히 알려졌다시피 '단일 이사회제'다. 회사 경영진인 사내이사와 외부 인사인 사외이사, 별도의 감사기구를 두는 구도가 일반적이다.
특히 국내 제조업 기업 대부분은 '경영상 효율' 등을 근거로 경영진이 이사회에 참여하고 의장도 오너나 핵심 경영인이 맡는 구조를 택하고 있다. 이런 구도가 대표적으로 드러나는 지표가 국내 이사회 의장 현황이다. 율촌 기업지배구조센터에 따르면 올해 기업지배구조 보고서를 제출한 비금융 상장사 509개사 중 사외이사가 이사회 의장인 비율은 13.4%다.
반대로 대표이사가 이사회 의장을 겸직하는 비율이 약 9할에 가까웠다.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을 겸직하는 사례가 많은 점은 기업들이 이사회의 독립성보다는 신속한 의사결정과 실행력 확보를 중요하게 여긴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현대자동차의 이사회 구성 개요. 출처=현대자동차 사업보고서
견제 도구로는 사외이사의 비율 등을 활용한다. 상법상 일반 상장회사는 이사의 4분의 1 이상을 사외이사로 둬야 한다. 자산총액 2조원 이상의 대규모 상장회사는 최소 3명 이상의 사외이사를 선임해야 하고 전체 이사회의 구성원 수 중 과반은 반드시 사외이사로 채워야 한다.
노동이사 제도는 법제화되지 않았다. 일부 공공기관이 도입하고 있지만 민간 기업에서는 극히 드문 사례다. 경제계에서는 경제 시스템의 축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른 차이라고 본다. 우리나라의 경제 체계가 영미식 주주자본주의를 따르는데 이런 시스템 아래에서는 노동이사제를 도입한 국가가 없다는 논리다.
주주자본주의 아래에서는 이사회의 주요 역할 중 하나가 주주의 대리인이다. 상법 개정이 추진돼 이사의 충실의무가 기업에서 주주로 확대되면 이 역할은 더 강해질 것으로 보인다. 노동이사제와는 목적 의식이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게 재계의 시각이다.
◇이원 이사회 법제화한 독일
독일은 이원 이사회 제도를 채택했다. 세계대전과 광업 시대, 경제 시스템 등의 영향을 받았다.
독일 상장회사의 이사회는 그 규모부터 우리나라와 다르다. 우선 이사회를 경영 담당의 집행이사회(Vorstand)와 견제 역할의 감독이사회(Aufsichtsrat)로 구분해 뒀다. 국내의 경우 사내이사가 경영진과 이사회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지만 독일은 경영과 감시·감독 역할을 명확하게 나눠둔 셈이다.
감독 역할의 이사회도 구성원에 따라 다시 두 분류로 갈린다. 주주대표와 노동대표다. 독일 증권회사법(AktG)과 공동결정법(MitbestG)에 따라 아예 이원화 체계가 자리를 잡았다.
노동대표를 배치하는 비율을 결정하는 기준도 우리와 다르다. 자산총액 기준이 아닌 종업원 수를 기준으로 2000명이 넘으면(광업 부문은 1000명) 감독이사회 의석의 절반을 노동자 대표로 채워야 한다. 감독이사회 의장과 부의장도 주주와 노동대표가 각각 맡는다.
복잡한 체계를 요약하자면 독일 상장회사의 의사결정 체계는 매우 독립적이고 이사회의 견제 기능도 강력하다. 이런 특성은 제조업도 예외는 아니다. 독일 방산기업 라인메탈(Rheinmetall)과 완성차 기업 폭스바겐(Volkswagen) 등은 기업 홈페이지 등을 통해 이사회 체계를 상세하게 공개하고 있다.
라인메탈은 노동자 대표가 감사위원회 부의장을 겸한다. 폭스바겐은 대주주 가문인 포르쉐·피에히 일가가 집행이사회가 아닌 감독이사회 내 주주 대표단에 포함돼 있다. 폭스바겐은 지배구조 등을 근거로 감사위원회에 포함된 대주주 일가가 경영진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판단한 이유까지 따로 명시해 뒀다.
독일 폭스바겐 감사위원회 소개문 중 오너 일가의 참여와 독립성을 설명한 부분. 출처=폭스바겐
◇오너 관계없는 '공동결정제' vs 명확하고 강한 리더십
단일 이사회와 이원 이사회 제도 중 어떤 형태가 정답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독일 이원 이사회 제도는 견제 기능이 강력하지만 그만큼 의사결정의 속도도 늦춰진다. 한국의 단일 이사회 제도는 명확하고 강한 리더십을 발휘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이사회의 견제 기능은 약하다는 지적이 있다.
독일식 이사회의 목표는 결국 대주주이든, 경영자이든 혹은 주주나 노동자를 포함해 단일한 하나의 구성원 이야기만은 듣지 않겠다는 것이다. 아예 집행이사회 내에도 노동과 인사를 담당하는 전문가를 따로 둔다.
독일의 제조 기업들도 오너 회사가 여럿이지만 소유 가문의 입김이 제한적이다. 가족 기업인 독일의 조선사 뤼르센(Lürssen)은 비상장사로서 상장회사보다는 오너의 영향력이 강하지만, 역시 공동 결정 견제기구를 의무적으로 둔다.
우리나라 대표 제조사인 삼성그룹과 현대차그룹, 한화그룹, HD현대그룹 등은 대주주 일가가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을 겸하거나 핵심 경영진으로서 이사회에 멤버로 속해있다. 단일 이사회 체계에서는 대주주가 경영에 참여할 경우 이를 분리할 기능이 마땅치 않은 것도 사실이다.
다만 기업규모 확대와 글로벌 투자자의 기준 변화에 따라 특히 해외 투자자의 비중과 수출 의존도가 높은 국내 제조사들은 사외이사 중심의 거버넌스 개편도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