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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존 이사회 점검

티엘아이-원익디투아이 합병철회…상법 이슈 때문?

일반주주 6.6%, 공개매수 불응…원익디투아이 고평가 논란도

이돈섭 기자

2025-07-11 15:22:35

편집자주

상장법인은 주식시장에 기업을 공개하면서 불특정 다수 투자자의 자금을 끌어온다. 그 대가로 상장사 이사회는 건전한 경영과 투자자 보호를 위한 여러 가지 의무를 부여받는다. 사외이사 선임과 감사위원회 설치 의무, 각종 공시 의무 등이다. 다만 별도기준 총자산 2조원 미만 기업은 의무강도가 약하며 당국의 감시망에서도 멀리 떨어져 있다. '회색지대(Gray Zone)'에 존재하는 이들 기업의 이사회를 면밀히 살펴본다.
원익홀딩스 산하 티엘아이가 그룹 계열사 원익디투아이 합병계획을 철회했다. 시장에서는 티엘아이가 지분 6% 이상을 보유하고 있는 일반주주의 이익을 고려한 조치라는 해석이 제기되고 있다. 자본잠식 상태에 빠져있는 데다 향후 사업 전망이 좋지 않은 원익디투아이의 가치를 본질보다 높게 평가해 합병을 무리하게 추진했다는 지적이다.

디스플레이 패널 핵심 반도체 부품 제조업체 티엘아이는 1998년 설립돼 40년에 가까운 업력을 가진 기업이다. 2008년 코스닥 시장에 상장한 티엘아이는 2023년 원익그룹에 편입됐고 지난해 자진 상장폐지했다. 티엘아이는 지난 4월 그룹 계열사 원익디투아이를 흡수 합병키로 했는데 최근 해당 합병안을 백지화시키기로 의사결정을 번복했다.

티엘아이의 합병 취소 결정은 일반주주의 이익을 고려한 결과라는 해석이 제기된다. 티엘아이와 원익디투아이 두 회사 간 합병비율은 1대 0.655024주였는데 원익디투아이를 고평가했다는 것. 지난 3월 말 티엘아이 자산은 426억원이었고 원익디투아이 자산은 69억원이었다. 이 시기 원익디투아이 자본금은 89억원으로 자본잠식 상태이기도 했다.

원익디투아이는 작년 한해 순손실 309억원을 기록하고 올해 사정도 여의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티엘아이는 측은 경영환경 변화와 경영상 불확실성 심화로 두 기업 사업구조 재편과 중장기 전략 재수립의 필요성이 커졌다면서 대외 여건 변화가 피합병 법인 주당 가치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여 합병을 취소했다고 설명했다.

시장 관계자는 "지금까지 이사회는 회사 이익만을 고려했으면 아무 문제 없었겠지만 상법 개정안 시행으로 전체 주주의 이익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 점이 의사결정 번복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면서 "일반주주가 현재 주주명부에 존재하고 있는 이상, 합병과 분할 등 기업 거버넌스 재편에는 보다 깊은 논의가 필요하게 됐다"고 말했다.


비상장사 티엘아이 주주명부에는 1815명의 일반주주가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일반주주가 가진 지분은 약 6.6%. 일반주주가 지분을 갖고 있는 건 원익홀딩스가 2023년 9월과 지난해 4월 두 차례에 걸쳐 티엘아이 주식을 공개 매수한 뒤 상장폐지를 계획했지만 일부 주주가 공개매수에 응하지 않아 사실상 기업을 강제 상장폐지한 데 따른 결과다.

원익홀딩스가 두 번째 공개매수를 추진하던 당시 티엘아이는 창업주의 횡령·배임 혐의로 주식 거래가 정지돼 있었다. 거래소 측에 이의신청서를 제출하는 등 해명 과정을 거쳐 거래 재개를 노려볼만 했지만 공개매수를 통해 지분 95% 이상을 취득하는 데 실패한 원익홀딩스는 관련 절차를 밟지 않고 사실상 강제 상장폐지를 주도한 것이다.

문제는 이사회다. 2019년 사외이사로 선임된 김병성 성균관대 교수가 올 3월을 마지막으로 6년 임기를 마쳤는데 후임 사외이사를 선임하지 않은 것. 지난 3월 말 현재 티엘아이 이사회는 홍세경 대표를 비롯한 사내이사 3명과 이제헌 감사 1명만으로 구성돼 있다. 일반주주 이익을 이사회에서 대변할 수 있는 사외이사가 현재 전무한 셈이다.

사내이사 위주의 티엘아이 이사회는 원익디투아이 흡수합병 안건을 지난 4월 의결했다. 그 다음달에는 임시주총을 개최, 원익홀딩스 주도로 해당 안건을 통과시켰다. 두 회사를 통합시킴으로서 인적 기술적 시너지를 극대화하고 기업가치를 제고한다는 게 티엘아이 생각이었지만 이사회 결의 3개월여 만에 두 회사 합병은 추진치 않기로 결정했다.

티엘아이 관계자는 "경영환경의 급격한 변화와 이에 따른 경영상 불확실성 심화로 두 기업 사업구조 재편 및 중장기 전략 재수립이 우선돼야 할 필요성이 커졌다"면서 "대외 여건 변화는 피합병 법인 기업가치, 특히 주당 가치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여 다각적 분석과 면밀한 검토를 통해 합병을 취소하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선 일반주주를 보호하기 위해 이사회를 보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제기되고 있다. 금투업계 관계자는 "티엘아이가 비상장사라 현행법이 요구하는 이사회 운영 규제를 따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일반주주 상당수가 주주로 남아있는 상황에서 사외이사를 선임하지 않은 것은 향후 문제 제기 소지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티엘아이와 원익디투아이를 지배하고 있는 원익홀딩스는 현재 사내이사 5명과 사외이사 3명으로 이사회를 꾸리고 있다. 사외이사진에는 골드만삭스 한국 총괄대표를 역임한 호바트 엡스타인(Hobart Epstein) 사외이사를 비롯해 카이스트 석좌교수인 신태균 사외이사, 로드스톤파트너스 대표인 양귀환 사외이사 등이 이름을 올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