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한 연세대 교수(
사진)의 사외이사 경력은 독보적이다. 2003년 수협은행 사외이사 발탁을 시작으로 미래에셋자산운용,
GS건설 ,
LG이노텍,
SK엔무브, 아주IB투자, 호텔롯데 등을 거쳐 현재 삼성SDS에 적을 두고 있다. 최근 20년 간 8개 기업을 거쳐 온 그의 이력은 교수 사회에서도 이례적이다. 지난 22일 서울 종로구에서 만난 신 교수는 자기만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경영진과 생산적 논의를 추구했기에 가능했다고 평가했다.
지금으로부터 20여년 전 미국에서 유학을 마치고 막 귀국한 신 교수를 찾은 기업은 수협은행이었다. 과거 신 교수가 뉴욕주립대 조교수 재직 시절 인연을 맺은 허성관 당시 해수부 장관이 신 교수를 기억하고 연락을 취해왔다. 당시 신 교수 나이는 서른 여덞이었다. 당시 정부 기조는 젊고 유능한 인재를 많이 기용하자는 것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기업재무 분야 전문가가 산학계를 통틀어 그다지 많지 않았다.
신 교수는 재무 전문성과 특유의 친화력을 앞세워 띠동갑 사외이사들과 교류했다. 젊은 신진 교수 활약상은 업계에 퍼지기 시작했다. 환경변화와 시행착오 등 다양한 이유로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던 상장사를 비롯해 상장을 계획하고 각종 규제에 맞춰 이사회를 꾸리기 시작한 비상장사까지 다양한 기업들이 신 교수를 찾았다. 신 교수는 최근 20년 간 삼성과 LG,
SK, GS, 롯데 등 주요 그룹 8개 기업 이사회를 거쳤다.
신 교수는 "이사회 안건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보려고 노력했다. 이사회는 기업 내부거래를 많이 검토하곤 하는데 특정 거래에 대해 이 거래가 오너에게 유리한 거래라는 지적도 여러번 던졌다. 회사 사정을 모르는 제삼자 입장에선 이 거래가 어떻게 보일까. 추진하고 있는 거래에 문제가 있다면 오너 역시도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외부인 입장에서 질문을 던지고 자료를 요청하고 그 과정에서 답을 찾았다"고 말했다.

현재는 삼성SDS 사외이사로 주가 부양책을 마련하는 데 고심하고 있다. 지난 3월 말 기준 삼성SDS 연결 기준 현금성자산(단기금융상품 포함)은 총 6조1096억원. 신 교수가 이사회에 합류하고 처음 던진 질문은 '막대한 규모의 현금을 어떻게 활용해 주가를 부양시킬 것인가'였다. 당시 경영진은 "투자 기회를 보고 있다. 현재 사업 환경이 좋지 않기 때문에 방향성을 잡을 때까지 기회를 노리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외이사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경영진을 신뢰하는 것이라는 게 신 교수의 지론이다. 사외이사가 주식을 매입하는 것만큼 긍정적 신호는 없을 것이란 판단에 동료 사외이사들에게 주식 매수를 권했다. 투자에 소극적이었던 이도 있었지만 그의 제안은 그들로 하여금 각자 2000만원 돈을 들여 주식을 매입케 할 만큼 설득력이 있었다. 신 교수는 "주가를 가지지 않고서는 일반주주의 마음을 알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신 교수가 사외이사로 활동하면서 소속 기업 주식을 매수한 경우는 삼성SDS 이전에도 많았다.
GS건설 이사회 재직 시절이 대표적이다. 신 교수는 2007년
GS건설 이사회에 합류해 2009년까지 활동했는데 이 시기는 미국발 금융위기가 발발해 그 여파가 생생하게 남아있던 때였다. 한때 18만원대를 오르내리던
GS건설 주가는 4만원대로 쪼그라들었다. 전국 각지에서 미분양이 폭증하면서 회사는 허덕이기 시작했다.
당시
GS건설 이사회는 허창수 회장이 의장을 맡아 주도하고 있었다. 허 회장은 미분양 사태 해결 방안에 대해 사외이사 각자에게 의견을 물었고 다음 이사회에서 경영진이 추가 보고를 할 수 있게 조치했다. GS그룹은 2008년 포스코 측과 컨소시엄을 맺고 대우조선해양 인수전에 참여했다가 막판에 발을 뺀 적이 있는데 허 회장이 숫자를 하나씩 따져볼 정도로 재무통이었기때문에 가능했다는 게 신 교수 설명이다.
신 교수는 "당시
GS건설의 주가 하락은 외부 환경 변화를 감지한 주체들이 공매도를 실시한 결과였다"고 진단하면서 "경영진에게는 미분양 사태 포함 현실적 경영 개선 방안을 외부에 공표하길 주문했고 이사회 차원에서는 회사를 신뢰한다는 차원에서 주식을 매입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2008년 말 신 교수를 포함한 당시
GS건설 사외이사 3명은 각자 1400만원 정도를 들여
GS건설 300주씩을 동시에 매입했다.
2014년
LG이노텍 이사회에 진입했을 당시의 경영상황 역시 녹록지 않았다.
LG이노텍은 1조원을 투자해 경기도 파주에 대규모 LED 공장을 준공했는데 당시 정부가 LED 산업을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분류하는 바람에
LG이노텍은 이 공장을 한 번도 돌려보지도 못한채 매년 수천억원 규모의 감가상각비를 계상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신 교수는 기업의 가능성을 내다보고 자기돈을 들여 주식을 사모았다.
신 교수는 "전쟁을 수행하고 있는 부대 안에 반대를 위한 반대를 제기하면 과연 정상적 의사결정이 가능할까"라면서 "기업의 이사회는 전쟁을 수행하는 부대의 본부같은 곳으로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자기 전문성을 바탕으로 경영진의 의사결정을 도와야 한다"고 피력했다. 최근 상법 논의 과정에서 집중투표제가 화두에 오르기도 했는데 집중투표제 이행에 따라 반대를 위한 반대가 속출할 수 있다는 점이 우려스럽다.
그런 점에서 이사회와 경영진 간 '케미'가 중요하다는 게 신 교수의 생각이다. 신 교수는 "경영진들이 회사 내에서 자기 일에 몰두하다보면 외부 시선을 자각하지 못할 때가 많기 때문에 사외이사가 외부 환경 변화를 감지하고 이런 시각이 있다는 점을 자기 경험에 맞춰 끊임없이 상기시켜줘야 하고 경영진은 그 조언을 생산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면서 "사외이사의 질이 그 기업 이사회 자체의 질"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