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업에 대한 기대감은 그 어느 때보다 커져 있다. 조선 3사 수주 낭보가 이어지는 가운데 관련 기업 실적과 주가도 상승 일로다. 2023년 한화그룹 계열사로 편입된
한화오션은 지난해 흑자로 전환, 방산 계열사와 추가 시너지 효과를 도모하고 있다.
한화오션은 출범 당시 엔지니어 공학자 출신 사외이사를 기용하며 이목을 끌기도 했다. 지난 23일 서울대에서 최근 2년
한화오션 사외이사로 재직한 이신형 교수(
사진)를 만났다.
이 교수가 꼽은
한화오션 이사회 특징 중 하나는 신속하다는 점이다. 빠른 의사결정과 신속한 집행으로
한화오션 사업이 궤도에 오를 수 있었다는 진단이다. 과거 미국과 일본 등에서 엔지니어로도 활동한 바 있는 이 교수는 개별 기업이 정부 등과 함께 손잡고 조선 기반 기술에 대한 적극적 투자를 주도하면서 세계 시장을 주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07년 조선해양공학과 교수에 임용된 이 교수는 18년째 교수로 재직 중이다.
이 교수가 한화그룹 연락을 받은 건 2022년 겨울이었다. 김포공항 라운지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던 이 교수에게 낯선 번호의 전화가 걸려왔다. 수화기 너머의 상대는 자신이 한화그룹 인사계 직원이라고 소개하면서 한화그룹이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하게 되어 이 교수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 이 교수는 이후 한화그룹 주 임원들과 연이어 접촉하게 됐고
한화오션 초대 사외이사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한화그룹은 2023년 4월 공정위 승인을 받아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했다. 2008년 대우조선해양 인수전에 등장해 내로라하는 기업들과 경쟁을 펼친지 15년 만이다. 대우조선해양은
한화오션으로 재출범하고 사내이사 3명과 기타비상무이사 1명, 사외이사 5명으로 이사회를 새롭게 구성했다. 이 교수의 사외이사 기용은 이목을 끌었다. 국내 대형 조선 3사 중 조선 공학 전문가를 이사회에 기용한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다.
이 교수는 "권혁웅 전 대표(부회장)를 포함해 그룹 경영진이
한화오션 출범을 준비하면서 조선업에 대한 스터디를 상당히 많이 해왔다는 느낌을 받곤 했다"면서 "조선 공학 분야 현직 교수이면서 과거 엔지니어로 일한 경력이 처음 조선업을 영위하는 그룹 담당자 눈에 띄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미국 아이오와대 기계공학 박사 학위를 받은 뒤 일본과 미국 등에서 연구원과 엔지니어 등으로 근무한 바 있다.
당시 한화그룹은 이 교수 외에도 조지 P. 부시 변호사와 현낙희 성균관대 교수, 이봉환 서울대 교수 등을 영입했다. 2대주주였던 한국산업은행도 사외이사 후보를 추천, 김재익 전 K
DB인프라자산운용 대표가 이사회에 진입했다. 우연찮게 국내 사외이사 전원이 서울대를 졸업해 유대관계도 형성할 수 있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장남 김동관 부회장도 기타비상무이사로 이사회에 직접 참여, 그룹 차원에서 힘을 실어줬다.
이사회는 대부분 월요일 오전에 개최됐다. 사내이사 대부분이 월요일 오전에 이사회에 참여하고 그날 오후 거제사업장 등으로 내려가 업무를 소화한 뒤 그주 금요일 오전 전후 서울에 올라오기 때문에 모두가 모일 수 있는 시간은 물리적으로 월요일 오전이 유일했다. 이사회는 체계적으로 운영됐지만 구성원 모두가 촌각을 다투며 일하는 탓에 경영진 보고 중심 회의가 된 것은 지금 생각해보면 다소 아쉬운 점으로 남아있다.
이 교수는 감사위원회를 비롯해 사외이사추천위원회, 내부거래위원회 등 소위원회 활동도 병행했다. 이 교수는 "
한화오션 이사회 특징은 경쟁사와 비교해 글로벌 시각으로 사업에 접근한다는 것과 의사결정이 굉장히 신속하다는 점"이라면서 "대우조선해양 시절과는 다른 형태의 의사결정 구조가 자리잡으면서 시장 안팎에서는 우려가 제기되기도 했고 실제 이사회 등 채널에서 관련 내용을 전달키도 했다"고 전했다.
작년 한해
한화오션 이사회는 정기 임시 이사회 모두 포함해 총 21차례 열렸다. 한화그룹 인수 전 월 한 차례 이사회를 개최한 것과 차이가 난다. 한화그룹
대상 유상증자를 시작으로 미국 홀딩스 컴퍼니 설립 건과 아부다비와 자카르타 지사 폐지 건이 이사회 결의를 받아 이행됐고 각종 내부거래와 계약체결 등도 활발히 논의됐다. 지난해 싱가포르 해양플랜트 업체 다이나맥 홀딩스 인수 작업도 일사천리에 진행됐다.
다만 의사결정 속도가 과거 대우조선해양 시절과 판이하게 달랐기 때문에 일각에선 우려의 목소리도 제기됐다. '조선업은 각 사업 영역이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리드미컬하게 움직여야 하는데, 일방적으로 드라이브를 걸면 어느 한 곳이 자칫 삐걱일 수 있다'는 평가다. 현장감이 중요한 해양사업부 수장 자리에 지난해 외국인 임원을 기용한 것이 대표적. 이 교수는 업계 안팎의 우려를 이사회에 전달하곤 했다.
이 교수는 "조선사가 단순히 선박을 제조해 파는 것은 사업 상 한계가 있으니 업·다운 스트림을 갖추고 사업을 확대해야 한다는 생각은 평소에 갖고 있었는데,
한화오션의 경우 이 방향성을 갖고 사업을 추진한다는 것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면서 "우리나라 조선 사업은 1970년대 시작해 이제 50년이 넘었는데, 수주에 집중하는 것뿐 아니라 직접 목소리를 내면서 시장을 리드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지난 3월 이사회를 떠났다. 지난해 말
한화오션 지분 5.9%을 갖고 있었던 국민연금이 이해상충 문제를 지적한 것이 문제였다.
한화오션이 이 교수가 소속돼 있는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와 유기적 협력 관계를 구축하고 있다는 점이 도마 위에 올랐다. 국민연금이 이 문제를 외부에 공표할 것을 예고하면서
한화오션은 결국 새 사외이사 후보를 물색해야 했고, 후임에 안완기 전 한국생산성본부 회장이 발탁됐다.
공과대학의 경우 외부 사업체와 협업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 졸업생 절반 가량은 조선 관련 분야로 진출하고 있다. 공대에 적을 두고 있는 교수가 연구분야 기업 이사회에 진출하는 경우 그 문턱을 낮춰야 한다는 지적이 시장 일각에서 제기되기도 한다. 조선뿐 아니라 반도체와 자동차 등 전문 제조 분야에선 기술 전문가를 영입해 사업 지평을 확대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화오션뿐 아니라 우리나라 조선사에는 더 적극적인 역할을 주문했다. 이 교수는 "일본이나 유럽 업체와 경쟁하려면 근본적 선박 기술에 대한 투자가 이뤄져야 하는데 그러려면 정부부처와 산하 연구소, 기업이 유기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면서 "개별 기업 입장에서도 시장을 장기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이 필요하다. 우리 조선업에는 이미 그런 능력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